이번 6ㆍ2 지방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여당의 대참패와 더불어 앞으로 4년간 전국의 초ㆍ중ㆍ고생의 57%가 전교조에 우호적인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진보 색채가 강한 교육감들이 갖고 있는 교육관과 교육정책에는 모두 네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즉 전면 무상급식 실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시행, 고교 평준화 확대 실시, 외국어고 및 자율고에 대한 규제정책 실시이다.
이들 가운데 인권조례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특히 고교 평준화와 외국어고 및 자율고 정책에 대한 진보 교육감들의 믿음은 그동안 추진되어 온 여당의 미지근한 수월성 교육을 향한 움직임마저 후퇴시킬 가능성의 문을 크게 열어놓게 되었다. 이런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더라도 결국 일부 교육수장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과 믿음 체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취임 이후 사사건건 교육 관련 행정부처와 마찰을 빚을 것이고, 최대의 피해자는 교육 수요자가 될 것이다. 4년이라면 꽤 긴 시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진보 교육감들의 소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6월 22일자 <조선일보>에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가 인터뷰에 응하였다. 아시다시피 곽 당선자의 둘째 아이가 현재 김포외고 2학년생이라고 한다. 그동안 외국어고와 같은 수월성 교육에 강하게 비판해 왔던 곽 당선자는 사적인 선택은 공적인 주장과는 크게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권교육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외국어고에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곽 당선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고 2인 아들이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다들 잠만 자고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하더라. 일반고에 가면 마찬가지일 테니 외국어고에 가겠다고 해서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국어고에 대해 잘 몰랐다. 입학식 때 교장과 교사가 학생들에게 1시간 동안 이야기하는데 성적을 어떻게 올리느냐에 집중돼 있지 인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더라. 속으로 ×표를 그었지만 이미 들어간 학교에 못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때문에 곽 당선자가 둘째 아이를 외국어고에 보냈다고 해서 비난해야 할 근거도 없고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일반고에 비해 외국어고가 좋은 학교라면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아이를 외국어고에 보내야 하고 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외국어고에 대해 잘 몰랐다”는 말은 조금 옹색한 변명이라고 본다. 어느 가정이나 아이들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공을 들이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하지만 직무유기를 하지 않는 한 아버지 역시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에 적을 두고 자기 자신이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식교육에 열의를 가져왔을 것이다. 외국어고 지원은 다년간 행해진 한 집안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과외비 등에서 평균적인 아이들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차라리 곽 당선자가 좀 더 솔직한 답변을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일반고를 보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외국어고를 보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왜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들 잠만 자고 분위기가 엉망일까?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을 아주 단순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학력수준이 다른 아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실력이 있는 아이들은 학교수업 내용이 시시할 테고 실력이 없는 아이들은 어려울 것이다. 교사 또한 어느 수준에 맞추어서 교육해야 할지를 알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는 그렇다고 치고 이런 상황이 그 뒤로 무려 6년이나 계속된다. 지금껏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해 마지않았던 평준화 교육을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진보 노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갖는 평등에 대한 열망을 존중하면서도 자주 그런 열망이 현실과 유리되어 많은 부작용을 갖는 점을 우려하게 된다. 이제까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평준화 정책을 실시해 왔고 그 폐해를 목격해 왔다. 이 때문에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모두 좀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 사적인 의사결정은 자식에게 유리한 쪽으로 내리면서 공적인 자리에선 평등을 외치는 것이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잦다. 같은 신문에서 6월 10일 인터뷰에 응한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로 치면 경기고 다니는 학생 외에는 모두 눈치를 보고 열등감 가지니까 경기고 없애자. 그랬잖은가? 어떻게 됐나? 외국어고ㆍ과학고가 생겼다. 유학도 간다. 지금 자사고도 만든다고 그런다? 이게 하나의 입장난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들은 어디로 보내나? 유학 다 보내고 외국어고 보내고, 아주 위선자들이다.”
김 지사의 말 가운데 “아주 위선자들이다”라는 문장이 폐부를 찌른다. 이제 솔직할 때가 되었다. 교육감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50~60대이기 때문에 중ㆍ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껏 자신의 이론을 현장에서 실험에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절박한 사람들은 30~40대로 중ㆍ고생 아이를 둔 사람들일 것이다. 가능한 정직한 정책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자기 자식에 대한 선택 따로 남의 자식에 대한 정책 따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우리는 정직해야 한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