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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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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패, 치유할 방법은?


법령에 기초한 규제 건수가 1만5000건에 육박한다는 게 국무조정실의 최근 통계다. 시행세칙, 창구지도 등 형체는 없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그림자 규제’까지 합치면 그 수는 셀 수조차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규제와의 전쟁’을 선언할 정도다. 그래서 ‘규제공화국’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규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여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며 나라 경제를 쇠퇴의 길로 이끈다. 박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말하면서 연일 규제혁파를 외치는 이유도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절실한 걱정 때문이다.


규제를 제대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생겨난 원인을 알아야 한다. 3권 분립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 입법은 국회의 소관사항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이는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정치적 경쟁을 통해서 선출된 정치가들로 구성된다. 입법은 국회구성원 다수의 합의를 통해서 결정된다. 그런 정치과정을 통해서 규제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건 이익집단과 관료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건 규제의 특징이다. 이는 지역·계층·산업의 특수이익을 보호할 집단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것이 ‘법’이라는 탈을 쓰고 개인과 기업을 정치목적에 예속시켜 그들의 자유를 치명적으로 제약한다.

규제의 늪과 정치실패


원래 법이란 그런 게 아니다. 법은 첫째로 특정 집단·지역·산업 등을 차별하거나 편드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집단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법은 항상 특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가진다. 금지될 행동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그런 성격을 가진 법이야말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대우해야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충실한 ‘자유의 법’이다. 이런 법의 테두리 내에서 누구나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편익을 얻는 보편적 법이다.


그러나 규제는 특수목적을 강압적으로 추구하기에 경제활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기업의 창의력 혁신 마인드는 위축된다. 그것은 ‘창조적 혁신’을 가로막는 독이다. 한국경제가 실업 저성장의 고질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유도 첩첩히 쌓인 규제 때문이라는 것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규제의 늪을 만든 건 정치실패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실패가 야기된 이유는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춘 의회제도(의회의 구성방법, 권한, 의결방법, 의회내부의 위원회 제도) 때문이다. 의회에게 자율권을 허용했지만 이의 남용을 막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정치실패와 헌법


왜 그런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는가? ‘왕의 정치’를 ‘민의 정치’로 바꾸기만 하면 자유와 번영이 저절로 보장된다는 순박한 믿음 때문이었다. 의회는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국회의원은 선량이기 때문에 양심에 따라 자유와 번영에 기여하는 보편적 입법을 수행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입법부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믿음은 틀렸다. 의회는 스스로 정치실패를 인식하고 수정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의회 스스로가 자신의 입법권을 제한하여 정치실패를 치유하기 위해서 차별 또는 편들기 입법의 억제 의무화, 입법영향평가 의무화, 재정수반 입법의 재원조달 방안 제출 의무화 등을 도입하리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치실패를 치유할 방법은 헌법에 그런 의무조항을 도입하는 것이다. 헌법은 상부구조로서 국회의 구성 기능 등 국회의 권력을 조직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특히 중요한 것으로서 그 입권을 제한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헌법은 후자의 역할이 매우 미약하다. 그래서 정치실패가 야기된 것이다.


개헌에 대한 여론의 태도로 보아 현제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의무 조항을 헌법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할 것이다.


민경국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wum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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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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