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구글과 애플, G8 정상회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리오넬 메시...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네 가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소재는 무엇일까? 바로 조세피난처와 페이퍼 컴퍼니이다. 뉴스타파는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조세피난처와 페이퍼 컴퍼니 논란에서, 구글과 애플은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 컴퍼니에 수익을 유보한 기업의 조세전략에서, G8 정상회담의 주제인 3T(Trade, Tax, Transparency)에서, 리오넬 메시는 조세피난처 소재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탈세 논란에서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라는 공통점을 가지게 되었다. 즉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에 관련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에 관련된 논의는 마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가진 것” 자체가 “악”으로 분류되는 듯한 모양새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도 애플은 조세에 대해 “Think Different”(1997년 애플 광고 모토)하다고, 구글은 “Be Evil”(구글 모토는 Don’t Be Evil이다)이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페이퍼컴퍼니 자체를 두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조세피난처와 페이퍼컴퍼니에 관한 오해와 진실
물론 조세피난처에 돈세탁이나 탈세를 하기 위하여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옹호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를 옹호할 논리도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하는 것까지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국가의 기업들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해외 기업 활동 전략을 세워 기업 활동을 하거나, 또는 관행적으로 페이퍼컴퍼니인 특수목적회사(SPC)들을 세워 활용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만 그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것도 우리나라의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내 대기업이 보유한 페이퍼컴퍼니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운업의 경우,1) 선박을 매입할 때,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거나, 선주 소유 선박을 페이퍼 컴퍼니(SPC) 명의로 등록하고자 이용되는 편의치적 등 국제 해운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계약 방식을 따른다. 여기에서 국내 해운기업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사용하는 경우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두고 있는 사실 그 자체를 두고 문제를 삼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2) 또한 해외사업영역을 발굴하기 위한 자금조달 목적 또는 해외 상장의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중국 바이두의 경우에는 나스닥 상장을 위해서 미국 기업회계기준을 사용하는 케이먼군도에 법인을 설립하여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기도 했다.
오히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지 않으면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투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해외 부동산 자산 투자를 할 때, 각국별로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에 대한 규제를 우회하고자 해당 국가에 특수목적회사를 세우고 자산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투자 소득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법인세를 정상적으로 납부하므로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또한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의 수익 자산을 취득하고자 해외의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모회사인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의 페이퍼컴퍼니로부터 수익을 분배받아 정상적으로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서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 국제 시장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즉 이 경우에서 페이퍼컴퍼니는 기업에게도 유익한 경영 전략을 실행하는 수단이 되고, 국가에게도 기업의 시장 확대에 따른 세수입을 늘리는 발판이 되고 있다.
탈세는 엄정하게 대처하되,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에 대한 비난은 말아야
국제적으로 세원이 잠식되면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비난도,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의구심도 점점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정상적으로 법인세나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점점 늘어가는 세수 증대의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누군가가 정상적으로 부담하여야 할 부분이 다른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전가되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다. 또한 각 개별 국가나 OECD 차원에서 구글이나 애플의 사례와 같이 탈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법의 입법 목적에도 정확히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하는 ‘공격적 조세회피 전략’(Aggressive Tax Planning, 이하 ATP)의 문제도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 역시 국세기본법 또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에 대한 입법적 대비를 마련해놓고 보완해나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기업 활동이나, ATP가 어떤 이유에서 나오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악의적으로 ATP를 활용하는 경우(어떤 경우가 악의적인 경우인가에 대해서 분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결국 법인세제 체계 내에서 기업 활동에 무리하게 부담을 주는 경우, 기업은 어떻게든 세제의 빈 틈(tax loophole)을 찾아 세무전략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붉은 여왕’(Red Queen)3)이 지배하는 영토인 조세제도 내에서 정부와 기업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해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까지 비난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비난이 곧 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소득세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현행 조세제도가 가진 지나친 복잡성을 비판하고, 궁극적으로 세제를 단순하고 합리적으로 개정하여 더욱 진화된 조세제도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올바른 답안이 되기 때문이다.
정승영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jurist14@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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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16개 대기업 그룹에서 보유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85%가 해운기업 소유이다. (“국내 대기업 페이퍼컴퍼니 85%는 해운
업… 대부분 사업 목적”, 조선일보 2013. 6. 5. 입력 기사)
2) 다만 해운업계에서도 점차 SPC를 이용한 조세 계획의 운신의 폭이 점점 좁혀지는 형국이다. 예를 들어 선박취득세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던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계약과 선박 반환 사건에 대해서 SPC의 지배회사에게 취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실질
과세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11. 4.14. 선고 2008두10591 판결)
3) ‘붉은 여왕’은 루이스 캐럴의 작품 ‘거울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의 등장인물로, 현실에 맞추기 위해 계속 달
려야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 차용하여 진화생물학자인 Van Valen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생물들이
계속 변화하면서 공진화가 이루어진다는 ‘붉은 여왕 이론’(Red Queen hypothesis)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과
배경을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