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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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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민주화, 그 이후 그리고 북한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과일노점상을 하는 스물여섯의 모하메드 봐지지(Mohamed Bouazizi)는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 불길은 분노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다. 23년간 집권해 온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Zine El-Abidine Ben Ali·74)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야반도주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었다. 튀니지의 민주화 불길은 이집트로 옮겨 붙었다.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끈질기게 버티다가 결국 군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퇴진했다. 튀니지의 한 과일노점상의 분신이 민주화의 불길이 되어 북아프리카의 철옹성 같았던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이제는 리비아로, 중동의 이란으로, 아시아의 중국까지 번져가고 있다.


중동ㆍ북아프리카 민주화 요구는 경제적 실패에 대한 분노


민주화의 불길은 튀니지의 한 길거리에서 조그맣게 시작되었지만 하나 같이 도시 전체로 번지며 권력의 심장부를 향했다. 누구도 그 불길을 잡을 수 없었다. 참으로 우연과 같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불길이 당겨졌던 것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였다.


The Economist지가 ‘로제타 혁명’으로 명명한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원인도 장기독재, 부패, 실업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근인(近因)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기상이변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지구의 기상이변으로 밀 생산이 감소했고, 국제시장 곡물가격을 끌어올렸다. 상승한 곡물가격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팍팍했던 이집트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졌다. 거기에 튀니지 민주화 불길이 옮겨 붙었다. 사실 변변한 야당 세력도, 반대 세력도, 시민사회도 성숙되지 않은 이집트에 옮겨 붙은 민주화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번지는 데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제 역할을 했다. 거기에 CNN, NYT 등의 서방언론들이 시시각각 민주화 시위를 보도하면서 세계 여론을 주도했고, 미국 외교정책까지 수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본다면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화 요구는 경제적 실패, 부패, 실업에서 찾아야 한다. 23년간 독재정권이었던 튀니지는 인구 1,000만 명의 연간 국민소득이 3,700달러에 불과했다. 무바라크가 30년간 독재했던 이집트의 2010년 국민소득은 튀니지에도 못 미치는 2,800달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가판을 해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는 한 이집트 시민의 인터뷰는 30년 무바라크 독재에 대한 불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재자에서 벗어나 더 잘살고, 더 많은 자유를 원했던 것이다.

민주화 혁명 뒤의 경제적 성취가 더 중요

문제는 튀니지든 이집트든 독재자를 퇴진시킨 민주화 혁명의 성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민주화에서 성공하고 나서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이들 국가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우리도 4ㆍ19 학생혁명으로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서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자 5ㆍ16으로 군사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국민들은 군사정부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1979년 10ㆍ26 사건으로 몰락한 박정희 유신정부 역시 붕괴의 근원은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과 보다 많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였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시위의 실패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정착이 쉽지 않음을 웅변한다.


민주화 혁명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 뒤의 경제적 성취이다. 즉,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부의 성취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사회의 부유한 정도가 민주주의의 지속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연구는 정설에 가깝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이상 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1,500달러 미만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립셋(S.M. Lipset)은 “The more well-to-do a nation, the greater the chances that it will sustain democracy.”라고 했다. 경제적 부가 민주주의를 지속시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말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인들이 민주화 시위에서 바랐던 것은 두 가지, 즉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자유의 확보였다. 그렇다면 북한의 우리 동포들도 제대로 된 쌀밥과 자유를 원할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이은 김(金)씨 왕조(王朝)의 은덕(恩德)은 받을 만큼 받았다. 줄잡아도 1948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제 63년이나 되었다. 튀니지의 벤 알리 23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30년, 리비아의 카다피 42년 독재와 비교해 볼 때 해볼 만큼 해보았다. 김씨 가문의 “독재는 이제 그만, Enough is enough!”이다. 그만둘 때도 되었다. “독재는 이제 그만”이라는 구호는 과거 2005년 레바논, 쿠웨이트, 이집트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화 시위의 구호였다. 북한에서도 그 구호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동토 북한에도 민주화의 봄바람 불 것


하지만 독재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총과 탱크로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리비아의 카다피를 보면서 북한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군부의 충성과 결연함이 떠오른다. 북한 군부는 과거 동구권의 민주화 도미노나 이번 중동지역 재스민 혁명 등 그 어떠한 민주화 물결에도 철옹성과 같은 담을 쌓고 김정일 정권을 지켜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니지 한 청년의 분신이 불붙인 중동 민주화 불길처럼 북한 민주화를 위한 탈북자들과 신지호 국회의원 등이 대북 전단지를 실어 북으로 띄워 보낸 풍선들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나비효과를 낼 것을 기대한다. 풍선에 담긴 것은 북한의 진실 전달과 자유 회복의 기원이었고, 역사에서 진실과 자유는 항상 승리했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끈질기게 지속되던 겨울의 추위도 갔다. 민주화의 따뜻한 봄바람이 동토 북한에도 불어올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iy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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