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상생이 중요한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많은 대기업들이 올 상반기에 두드러진 실적을 거둔 반면, 중소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상생정책은 더욱 큰 힘을 받게 되었다. 나아가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국정의 주요 지표로 강조하면서 상생정책은 이제 MB정부의 중요한 정책코드로 정착되는 것 같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상생정책은 너무나 좋은 정책구호다. 실적이 좋은 대기업들에게 이젠 혼자서만 잘 나가지 말고 중소기업도 끌어안으라는 얘기이니 수많은 중소기업인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 표어인가. 표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정책이다.
실제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정책은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정책이다. 경제위기 때마다 더욱 심화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적절한 조화를 통해 국가경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자는 논리를 어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춘 이상적인 정책목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연일 정부나 관련 단체들에서 전시성 협약이나 체결하고, 대통령이나 장관이 대기업 총수를 불러 중소기업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고 해서 상생의 분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는가. 또한 1960~1970년대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가 주도하여 상생을 독려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크게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특히 중소기업 실적부진의 책임이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나 약탈적인 행태에 기인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상생을 종용해야 한다는 접근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합해서 0이 되는 영합(零合)게임의 구도로 만드는 정책으로서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다시 말하면 대기업이 이익을 줄여서 그 이익을 중소 협력업체에 넘겨야 한다는 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득실의 합계가 항상 0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 변화가 합해서 0이 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후생은 제자리걸음인 채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대립과 갈등구조만 확대된다.
실제로 서로 간의 인센티브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가 아니라, 일시적인 정부의 압력으로 형성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아무리 총수를 불러 상생을 다짐받는다 해도 제로섬 정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갑’인 대기업을 ‘을’인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가해자로 치부하는 식의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우선 일방적인 대기업 규제가 아니라 부당한 대기업의 횡포를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하청관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갑’인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거래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하도급관계를 표준화하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해 주며, 일정한 조건하에서 지속적인 계약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정부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일시적인 단속이나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거래 관계를 표준화시켜 적절한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갑인 대기업도 제도적으로 분명하게 적시된 부당한 거래는 당연히 규제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법 제도와는 관계없이 수시로 터지는 정치사회의 이슈와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제로섬 게임을 추구하는 상생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중소기업의 중견화(中堅化)와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현행 법 체계는 영세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지원 때문에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전할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규모가 커지면 기업 자체를 2~3개로 분리하여 중소기업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 버렸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중소기업이 스스로 영세성을 탈피하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중소기업도 결국은 경쟁력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자생력을 길러나가기 힘들다. 반면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은 국내외의 수없이 많은 기업으로부터 원자재를 조달할 수 있다. 국내 조달이 경쟁력이 없다면, 어떻게 지속적으로 애국심에만 의존하며 국내 기업과 협력하려 하겠는가. 대기업 역시 완제품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지원정책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지원이다.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고, 대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 중소기업과의 기술협력을 유도하거나 대외적인 기술협력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과의 상생을 유도하는 궁극적 목표는 대기업과의 제로섬 게임을 통한 중소기업의 이익 증진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목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세계시장에서도 뛸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장단기 요인을 파악하고, 기술개발과 노동력 확보, 해외시장 개척, 대기업과의 공정거래 등을 유도할 체계적인 중소기업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공연히 대기업과의 상생만을 강조하며 인기영합적인 정책에만 집중하면 정책성과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제고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상생정책의 접근방법을 제로섬 게임에서 합해서 더 큰 것을 만들어주는 정(+)의 게임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eongky@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