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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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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확대적용에 대한 유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양자가 상호 대등한 계약교섭력을 가지지 못하게 됨에 따라 대기업의 우월한 지위 남용에 의한 불공정 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중소기업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거래의 예로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하도급 거래와 가맹본부와 가맹점간의 거래 등이 있다. 이들 간의 갈등은 대·중소기업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평적인 차원에서의 경쟁관계와는 달리 취급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중소기업간 거래에서 대해서는 법체계가 초기에는 민법(계약법)에서 시작하여 공정거래법, 그리고 이제는 하도급법 및 가맹사업법을 위시하는 다양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실질적인 규제의 수준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경제규제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여러 논란 끝에 국회는 4월 30일 경제민주화 명분으로 하도급대금의 부당한 단가 인하, 부당한 발주 취소, 부당한 반품 행위에 대해 3배 내의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punitive damages)을 원사업자에게 부과토록 하는 개정안을 가결하였다. 한편, 국회는 이 제도를 가맹사업법에도 도입하려는 입법을 추진하였다가 슬그머니 입장을 변경하여 정무위원회에서 가맹사업법의 경우에는 도입하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국회의 최종 결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법체계 정합성에 부합하지 않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확대적용의 문제점


이미 하도급법에는 하도급거래에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함으로써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는 것으로 하되 기술자료 탈취ㆍ유용에 대한 고의ㆍ과실의 입증책임을 원사업자에게 지우고 있다(법 제35조 제2항). 하도급법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 주된 목적은 원사업자의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을 일소하고 재발행위를 방지하자는 데 있다.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는 것 이외에도 입증책임 마저 전환하여 원사업자에 부과하다 보니 기술 자료의 유용과 관련해서는 과도한 제재를 원사업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아무튼 이와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확대적용은 손해배상제도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손해의 전보(compensation)와 장래의 불법행위에 대한 억제(deterrence)를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있다. 또한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손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액을 타당성 있게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단순하게 선해(善解)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확대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하게 얻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의의와 연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혁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민사법과 형사법의 구별이 미흡한 상황에서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 부과하는 준형사적(quasi-criminal) 구제수단이다. 따라서 사법(civil law)과 공법(public law)의 구분이 비교적 엄격하고,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기소주체가 검사로 일원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법체계하에서 사인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당사자에 의해 형사처벌의 효과를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우리 민사법상 배상원칙의 가장 핵심은 실손전보이다. 즉, 손해배상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일정한 사실에 의하여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전보(塡補, compensatory damage)하고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상태로 원상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손해의 범위는 손해배상책임을 발생케 하는 원인사실과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것에 한한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실손전보의 원칙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공서양속(the ordre public)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 독일에는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공서양속과 충돌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판례도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륙법적 전통을 가진 독일, 스위스, 이태리, 일본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같은 이유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셋째, 실손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책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수급사업자(하청업자)는 소송을 통해 부(富)를 증가시키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 실손전보액을 제외하고서도 무려 실손의 2배에 해당하는 추가적인 수익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수급사업자가 변호사에 대해 성공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즉,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은 채) 소를 제기하거나 변호사가 하청업자로 하여금 장래 승소하는 경우에만 비용을 지급받겠다는 조건을 달아 소송을 제기할 것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특히 소송성향이 증가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소송과잉사회화(litigious society)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남소의 문제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 이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법 제25조의3)와 공적인 형사처벌(법 제30조)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이는 어느 하나의 법위반 행위에 대하여 부과되는 제재(sanction)의 총량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것으로 된다. 이 때문에 개정 하도급법에 대해서는 과잉처벌 내지 이중처벌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수범자의 저항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가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문제점을 과연 모르고 있을 것인가? 답은 “아니오”로 보인다. 우리 국회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우리의 법체계와 정합성이 떨어지고 과잉처벌의 논란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의 공정성 확보차원에서 마련된 대표적인 법률로 하도급법과 가맹사업법이 있지만, 전자에는 이 제도를 과감히 도입하면서 후자의 경우에는 도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부터 국회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하도급법에 관련해서는 국회가 다분히 정책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다 보니 법체계를 무시한 누(累)를 범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ykw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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