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법무부는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수렴된 의견을 반영하여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예고기간 12월 21일까지)하였다. 소위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포이즌 필’을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신주인수선택권’이란 일정한 기간 내에 발행회사로부터 일정한 수량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옵션 권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권리를 적대적 매수시도자를 제외한 기존의 모든 주주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면 적대적 매수자가 취득했던 주식이 희석되어 결국 적대적 매수를 포기하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개정안에는 개별회사가 정관에 신주인수선택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하고 실제 발행은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이사의 과반수 찬성으로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사회의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사 총수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발행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강화하였다. 법무부는 이러한 내용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거쳐 정부안을 최종 확정한 후 내년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포이즌 필 도입 논쟁의 잘못된 출발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포이즌 필 역시 장단점이 있다. 흔히 말하는 가치 파괴적인 ‘먹튀자본’의 공격을 막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외부에서의 경영권 위협이 줄어 경영자가 자신의 지위에 안주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의견들을 모두 수렴하다 보니 그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법률안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신주인수선택권 도입 자체를 반대했던 시민단체 등은 당연히 불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원했던 재계도 반기는 것만도 아니다. 엄격한 발행요건으로 인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불만족스러운 결과는 논쟁 초기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포이즌 필 도입 논쟁의 출발은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사용되는 ‘신주인수선택권’제도의 도입 여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주인수선택권을 경영권 방어수단의 일종인 포이즌 필의 또 다른 이름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주인수선택권이 바로 포이즌 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주인수선택권은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데, 그 중 경영권 방어라는 기능을 할 때 비로소 포이즌 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마치 일부를 전부인 것처럼 보며 논의를 시작했으니 당연히 사회적 갈등만 야기하고 그 결과인 개정 법률안에 대해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이즌 필 도입 논쟁은 신주인수선택권의 일반적 기능에 대한 충분한 논의에서부터 출발했어야 했다고 본다.
신주인수선택권의 일반적 기능
이번 개정 법률안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신주인수선택권은 일정한 기간 내에 발행회사로부터 일정한 수량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옵션권리의 일종인 미국에서의 워런트(Warrant)를 모델로 한 것이다. 미국에서 워런트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자본시장에서 유용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매력적이지 못했던 증권들에 시장성을 부여하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는 기능을 하거나 회사 재건과정(reorganization)에서 주주들이나 채권자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즉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감미제(sweetener)로 사용되거나 신속한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catalyst) 기능을 수행해 왔다.
미국의 워런트를 도산상태에 빠진 기업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이 기업은 회생을 위해서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자금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돈을 꿔준다고 해도 이 기업은 이자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높은 이자 때문에 회생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주식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다 망해가는 기업의 주식을 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때 워런트가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채권자에게 낮은 이자로 빌려줄 것을 요구하는 대신 워런트를 제공해 준다고 제안하면 채권자도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을 것이다. 채권자는 비록 낮은 이자를 받지만 만일 부실기업이 차후에 회생하여 주가가 상승하면 워런트상의 옵션권리를 행사하여 낮은 가격으로 이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여 상당한 이득을 낼 수 있으므로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도산상태에 빠진 기업들이 워런트(신주인수선택권)를 사용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도입하고자 하는 신주인수선택권은 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위의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할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우리나라 S은행의 유상증자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당시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은행들이었고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규모의 증자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주식의 시가는 액면가를 밑돌고 있었다. S은행 주식 역시 액면가가 5천 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가는 3천 원에 불과하였다. 액면미달 발행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최소 5천 원에 발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3천 원짜리 주식을 5천 원에 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5천 원에 인수하도록 하려면 이들에게 ‘유인책(sweetener)’을 제공해 주어야만 하는데, 아마 미국에서라면 워런트를 제공했을 것이다. 즉 현 시점에서 시가보다 비싼 액면가로 주식을 인수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장래의 시점에서 신주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선택권을 함께 부여한다고 하며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도했을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주가 상승 시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으므로 쉽게 응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선택권을 주주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워런트 제도가 없었으므로 당시 S은행이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워런트와 비슷한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BW)였다. S은행이 필요했던 것은 워런트였지만 우리나라 법에서 워런트는 채권에 부과해서만 발행할 수 있었으므로 S은행은 할 수 없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채권(bond)가격을 10원으로 하는 BW를 발행한 것이다. 그 후 S은행의 주가는 상승하였고 투자자들은 낮은 가격에 신주를 인수하여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와 같이 비정상적인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워런트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의 포이즌 필 도입
생활용품의 일종인 칼(신주인수선택권)을 새로 도입하면서 혹시라도 이 칼이 무기(포이즌 필)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칼을 무기라고 규정하고 이를 새로 도입하려는 경우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결과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지만 우리는 후자에 해당한다.
미국이나 일본 회사법은 경영권 방어와 무관하게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신주인수선택권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미국에서의 워런트, 일본에서의 신주예약권이 그것이다. 다만 경영진이 이러한 제도를 사용하여 자본조달이 아닌 경영권 방어의 목적으로 공격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신들 회사의 주식을 희석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었을 때 비로소 ‘포이즌 필’이 되는 것뿐이다. 이때 자본조달의 편의를 위해 마련해 놓은 워런트나 신주예약권을 경영권 방어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경우 어느 정도까지 적법한 사용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미국과 일본 포이즌 필 논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적대적 M&A와 이를 저지하는 경영권 방어 상황이 워낙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므로 개별 사건마다 적법성 판단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어 사전적으로 법적 강제력이 있는 회사법에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판단기준의 경직성으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양국 모두 구체적인 사건을 전제로 사후적으로 사법부에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일본 사법부는 미국과 달리 경험이 부족하므로 행정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의 형식을 통해 적법성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고 있다.
신주인수선택권을 자본시장에서의 유용한 제도로 보며 회사법에 일반적으로 도입한 미국ㆍ일본과 달리 우리는 처음부터 이를 포이즌 필이라는 무기로 인식하며 도입하고자 하였고, 현재 입법예고 된 법률안이 그 결과이다. 따라서 최근 포이즌 필 도입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들 나라들보다 유독 심했으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신주인수선택권 사용을 위한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신주인수선택권을 무기로 보며 도입하다 보니 경영권 방어 외의 용도로 유용하게 쓰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권 방어 외의 기능으로 쓰기 위한 신주인수선택권의 일반적 도입에 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경영권 방어 무기로서의 정당성은 사후 판단토록 해야
인류가 처음 칼을 사용하기 시작할 당시 그 용도는 사냥 등의 일상생활을 위한 도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도구가 언제부터인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도둑이나 강도를 잡는데 사용될 필요가 있었겠지만 가끔 과잉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고 실수로 정당한 방문객에게까지 사용되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칼의 사용을 금지시키거나 제한된 조건하에서만 사용하도록 한 사회는 없었다. 그랬다면 현재 칼로 인한 사고율은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칼이 분명 위험한 물건이긴 하지만 이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사용을 통제하며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주인수선택권을 무기가 아닌 자본시장에서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며 회사법에 도입하고 이것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무기로 사용하였을 경우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사용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사후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신주인수선택권을 무기로 사용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사용의 주체인 기업들과 이러한 사용에 대해 적법성을 판단해야 하는 사법부에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적법성 판단 기준을 행정지침의 형식으로 제공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현재 포이즌 필 도입의 첫 단추를 잘못 낀 상황에서 필자가 제시한 이러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의 논의 과정이 이러한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수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잘못 낀 첫 단추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