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즈음 불붙은 복지논의가 최근 재원조달을 위한 증세논의로 이어지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복지와 성장,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조세제도의 개혁방향 등 여러 이슈들이 뒤섞여 각계각층에서 제자백가식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되었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른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필자의 견지에서는 논의의 대상인 복지와 이와 개념 설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의 기본적 성격이 무엇이냐에 대한 원초적 질문에 대해서도 논객에 따라 답이 다르다.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논의의 진전을 보기 힘들고 합의를 이끌어 내기 힘들게 된다.
복지는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 골고루 잘사는 사회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계층이 소외받지 않고 사회가 제공하는 여러 기회를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복지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제공의 형평성이라 하여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의 형평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된 사람에게 재정적 지원을 통해 소득보전을 해 주는 것은 결과의 형평성 제고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득보전의 궁극적 목적이 이를 통한 재활의 기회 제공에 있다고 본다면 기회제공의 형평성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기회의 제공은 구성원 간 자원의 재분배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소득의 재분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복지는 소득재분배를 통해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의할 것이 국가에 의한 복지제공이란 개념이다. 복지논의에서 흔히 복지확충의 주체를 국가로 보는 경우가 많다. 국가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하고, 국가에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마치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제3의 자원이 있는 것처럼 인식시킴으로써 복지확충이 수반하는 특정계층의(여기서 특정계층이란 최근 증세논의에서도 보듯이 단순히 고소득 계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득박탈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도록 만든다.
소득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현상 해소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아
소득재분배는 그 의도가 아무리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국가의 개입을 통한 특정계층의 소득 박탈을 수반한다. 이러한 국가의 강제적 공권력 행사는 해당 소득계층의 동의가 있을 때에 한해 정당성이 확보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복지의 목적이 사회적 연대의 강화에 있다고 한다면, 소득박탈에 대한 동의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동의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소득재분배를 통한 복지는 오히려 계층 간 갈등구조를 더욱 악화시켜 사회적 연대의식을 저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복지논의에서는 소득재분배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또 다른 문제는 복지확충을 목적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복지확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는 복지의 확충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약화되는 주된 원인을 주로 소득양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볼 때 작금의 복지논의는 더더욱 그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 소득양극화는 경제발전에 따라 시장이 분화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필연적 결과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은 소득재분배 뿐 아니라 시장의 구조개선이라든가 저소득층의 경쟁력 향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전반적이고 대대적인 복지확대를 시도했다가 U턴한 여러 선진국들의 사례는 소득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현상 해소 시도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복지에 치중한 지금의 논의는 사회적 연대의식의 강화로 화두를 바꾸어야 한다. 우선 연대의식의 훼손이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수단으로서의 복지가 어디까지 확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pkim@kilf.re.kr)
--------------------------------------------------------------------------------------------------------------------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