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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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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과 역전이 가능한 이유


스포츠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추격과 역전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잘 나가는 선수나 팀, 아니면 기업이나 산업을 뒤쫓아 가 앞질러버리는 일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추격과 역전의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추격과 역전은 선발자(first-mover)와 후발자(latecomer)간의 2자 혹은 다자 게임의 결과로 나타난다. 즉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하거나 운이 따라주거나 등 게임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추격과 역전의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노력, 자만, 환경변화의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추격과 역전의 게임이 성립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후발자의 노력


먼저 후발자의 노력은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된다. 가만히 있는데 일등과의 격차가 줄어들거나 내 지위가 올라가는 일은 없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가 일등을 차지한 산업들, 즉 Dram, TFT-LCD, 조선, 디지털 TV 등 무엇을 보더라도 엄청난 노력과 정열이 투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설비투자나 마케팅 등 전략적 요소와 함께 생산성과 기술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두 번째 조건: 선발자의 자만(hubris)


둘째, 내가 노력한 것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살펴보면, 일등기업이 무언가의 이유로 문제가 발생하여 스스로 경쟁력을 상실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유명한 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이치(堺屋太一)가 쓴 『조직의 성쇠』(PHP 研究所, 1996)라는 책을 보면 잘 나가던 조직이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지 잘 분석되어 있다.


또한 Allison의 명저 Essence of Decision(Little Brown, 1971; 1999년 공저 형태로 개정판)에서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의한 부작용과 오류의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집단사고란 조직의 의사결정에 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잘 저지르지 않지만 동질적인 성격을 갖는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결정하다보니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을 지칭한다. 최근 몇몇 성공적인 IT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대형 실수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성공한 기업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자만(hubris)도 추격과 역전을 허용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유행했던 ‘교병필패’라는 사자용어가 자만을 경계하는 경구인데 업계 일등이나 高성과 기업들이 겪는 위기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잘 나가는 시기가 길어지면 조직 어디선가 나사가 풀리고 분위기가 느슨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과거의 성공체험도 도전정신이나 긴장감을 해치게 되어 결국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로 둔갑되곤 한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조건: 환경변화 - 기회의 창이 열렸을 때 활용할 수 있어야..


이렇게 후발자의 노력과 선발자의 자만이 합쳐져서 추격이나 역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둘의 조건보다 중요한 변수가 세 번째의 환경변화이다. 노력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자만도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추격과 역전의 이면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가 기회나 위협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잘 이해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바로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다. 방 안이나 실험실에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동안에 어쩌다 창문이 잠깐 열리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그간 내공을 쌓는데 주력해온 사람이나 기업은 열린 창문을 통해 외부의 좋은 요소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창문은 오래 열려 있지 않고 조금 있다 닫힌다. 이것이 기회의 창이다.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 기회의 창이 열릴 때를 대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다 기회의 창이 열리면 이를 100% 활용하여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디지털 TV 산업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 업체들은 아날로그 기반의 HDTV 기술과 시장을 선점한 일본이 건재하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디지털 전환이라고 하는 기회의 창을 활용하여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일등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한국은 이 분야에서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굳건한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에게 준비된 실력이 있었고 일본 업체도 자만했을지 모르지만 환경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추격과 역전, 결국 변화의 모멘텀을 잘 활용하는 것이 관건


이처럼 추격과 역전은 여러 가지 조건이나 요인이 겹쳐서 발생한다. 우리는 그동안 주로 자만을 이야기했다. 성공하면 안이해질 수 있기에 자만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 자만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겠는가? 사건은 늘 우리가 평소 잘 체크하지 않는 부분에서 일어난다. 생각지 못했던 실수나 판단 미스가 점차 쌓이는 사이에 조직은 멍들고 상처받아 칼을 갈고 있던 상대에게 역전을 허용하게 된다.


여기에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환경의 변화가 수반된다. 게임의 일방이나 쌍방이, 원하던 원치 않던, 환경은 변화한다. 요즘에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서 보듯이 변화의 양상도 복잡하고 어렵다. 변화가 누구에게 유리할지 모르지만 변화의 모멘텀을 잘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회의 창이 열릴지 안 열릴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평소 꾸준히 노력하고 대비하는 자에게만 환경변화는 기회의 창으로 작용한다. 노력했는데 기회의 창이 안 열리면 할 수 없고...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yykim@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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