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出向)제도란 기존에 근무하던 기업(출향원기업)의 임직원이 다른 회사(출향처기업)에 옮겨가서 그 회사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아 근무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본은 정부가 출향기업1) 부담분의 50%를 지원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출향제도를 이용하여 1년에 40만 명 이상의 근로자가 다른 회사나 공공기관에 출향(파견)하여 근무를 하고 있다.2) 이 제도를 통해 퇴직예비인력은 현장 적응력을 높일 수 있게 되며,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우수인력을 활용하거나 영입할 수 있게 되어 인력난 해소와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출향제도는 국가 전체적으로 인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기할 수 있게 되며,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일시 퇴직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완화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한국형 출향제도(중소기업의 대기업 중견인력 활용방안) 개념도
우리나라의 경우 전경련의 제안으로 2006년부터 “대기업 중견인력 파견제도”가 도입되어 LG전자가 시범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3) LG전자의 경험사례를 보면 인력파견 대상자는 물론이고, 이들 인력을 활용한 중소기업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가 중소기업 파견인력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해 주고 있음에도 그동안 홍보 부족과 대기업 노동조합의 부정적 시각 등으로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베이비붐 세대 중 퇴직으로 내몰리는 근로자가 앞으로 9년간 매년 25만∼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출향제도의 활용은 일본에서 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구직난, 낮은 생산성과 열악한 근로조건 등으로 우수 인재의 확보가 어려운 대다수 중소기업들의 경우 대기업으로부터 파견된 우수 인력을 저렴한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생산성 제고는 물론 기술 및 마케팅력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성장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4)
매년 5∼10%의 인력을 구조조정하며, 신규인력을 새로 채용해야 하는 대기업들 입장에서도 출향제도를 통한 인력 파견은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은 물론 퇴출인력의 사후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대기업에 신입직원으로 들어와 임원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는 인원은 극히 제한되다 보니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는 고급인력들은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고급인력들은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다른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퇴직 후에는 명퇴금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데, 중소기업 근무경험이 없는 대기업 인력들은 불과 2∼3년 내에 영세업자로 전락하거나 실직상태에 빠지기 쉽다. 출향제도의 활용은 이들 고급인력이 퇴직 후 곧바로 사업전선에 뛰어들기보다는 중소기업 등에 가서 2∼3년 근무토록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게 하여 미래 창업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어 이들의 사업 실패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제도이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도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출향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운영시스템 보완과 정책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력 수요와 공급을 중개해 줄 수 있는 중개(운영)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기업의 출향대상 인력정보를 상시적으로 수집ㆍ관리하고, 중소기업의 맞춤형 인력 수요를 파악하여 대ㆍ중소기업 간 인력교류를 중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존에 출향제도를 시범적으로 추진해 온 LG전자의 경우도 훌륭한 인사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사 직원을 중소기업에 파견시키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였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중개기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배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향제도 활성화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출향제도를 활용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중견인력을 활용하는 경우 인건비 부담이 걸림돌이 된다. 통상 중소기업의 인건비는 대기업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선뜻 대기업의 출향 인력을 중소기업이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이 출향 인력의 인건비 50∼60%를 2년간 퇴직위로금 대신에 지원하고 나머지를 중소기업 등 활용기관과 정부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도록 재계가 제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안대로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은 적은 인건비 부담으로 고급인력을 생산성 향상이나 경영혁신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도 출향제도 활성화를 제약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대기업 인력은 근무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창업에 앞서 중소기업 현장에서 2∼3년 근무하는 것은 미래에 사업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출향 인력들이 회사기밀이나 정보를 빼내 대기업에 제공하거나 이를 이용해 중소기업 경영에 간섭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련 당사자들의 선입견과 불신이 이 제도의 활성화를 제약하는 만큼 출향제도의 홍보와 부작용 최소화 방지에 지속적인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는 시범사업 단계의 소극적인 자세와 형식적인 예산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대란을 완화시키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제도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출향제도의 활용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퇴직인력들이 바로 일선 사업현장에 뛰어드는 것을 막는 대신에 중소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 일정기간 경험을 쌓으면서 제2의 삶을 준비하도록 도우며, 우수 대기업 인력활용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 lbw@keri.org)
---------------------------------------------------------------------------------------------------
1) 일본에서 출향기업은 ①경제상의 이유로 인해 급격한 사업활동의 축소가 불가피한 사업주, ②대형 도산 사업
주와 하청사업주 또는 거래사업주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2)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에 의하면 출향자 수가 1997년 62만3,500명, 2001년 60만2,000명에 달했으며, 2003년에
는 43만2,200명으로 감소하였으며, 그 이후 40만 명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일본의 인력파견(출향)제도가 대기업 인력의 고용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2005년 전경련
이 제안한 방안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지도하고 경영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종전에 국내에서도 일부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단기간 인력을 파견하는 사례
가 있었지만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경영비밀 노출 등을 우려하여 대기업 파견인력의 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
지 않았다.
4) 중소기업의 생산성(2008년 100 기준)은 영국 188.4와 미국 182.0에 크게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대기업 생산성
의 1/3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며, 특히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생산성은 더욱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