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가 1936년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발표한 이래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침체에서 탈출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재정정책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만연하기 전까지 선진국들의 핵심적인 경제정책이었다. 케인즈의 이론이 나온 시대적 배경은 대공황이다. 장기간 생산과 소득이 감소하고 실업의 급증과 더불어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었던 대공황이라는 현실은 케인즈로 하여금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불황에 빠진 경제가 자동적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것이고 따라서 불황에서 벗어나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증대를 통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케인스의 생각이었다.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서구 선진국들을 휩쓴 1970년대 이후 케인즈경제학은 주류 이론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최근 케인즈경제학과 재정정책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전환점은 역시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어지는 서구 선진국들의 경기침체, 그리고 더딘 경제회복에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수요의 급감은 확장적 통화정책과 더불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촉발시켰다. 확장적 통화정책의 경우 정책금리가 0으로 떨어졌음에도 대출 및 투자·소비 증대의 효과가 없자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유동성 증대책을 통해 수요를 촉발시키려는 정책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의 경기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확장적 통화정책이 대출과 수요를 촉발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에도 수요가 증대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케인즈의 설명처럼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면 양적완화와 같은 확장적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공급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현금 선호 현상으로 인해 이자율이 떨어지지 않아 투자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을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케인즈의 대공황에 대한 인식과 유사하다. 이런 인식에 근거해서 케인즈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을 더 선호했다.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더 큰 규모의 대대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인식에 기인한다.
재정정책이 현실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수준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아
케인지언의 시각으로 보면 문제는 유효수요 부족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수단을 이용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와 같은 극단적인 통화정책도 효과가 없고 재정정책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더욱 강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유로존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까지도 대규모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누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더 큰 규모의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재정건전성을 고려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이유는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긴축정책이 경제위기를 더 심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는 조세수입이 감소하고 실업의 증가에 따라 재정지출이 늘어 재정정책의 변화 없이도 재정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서 불황이 지속된다면 재정적자가 증대될 수 있다.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긴축정책이 경기불황을 심화시킨다면 재정위기는 더 악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핵심 쟁점은 재정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수준이다.
정부지출의 변화에 따른 국민소득수준의 변화를 나타내는 계수를 재정승수라고 하는데 이 재정승수의 크기가 재정정책의 효과를 보여주는 핵심이 된다. 재정승수의 크기가 1 이상이라면 정부지출의 증대는 GDP 혹은 국민소득을 증대시킨다. 반면 재정승수가 1 이하라면 정부지출의 증대는 증세 혹은 국가부채 증가에 따라 국민소득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재정승수를 추정한 연구들에 따르면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차입에 의해 조달되는 정부지출의 승수는 0.8에서 1.5 사이로 나타난다. 반면 조세수입에 의해 재원이 조달되는 경우 재정승수는 1 이하로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 결과들만 놓고 보면 재정정책 효과의 명확한 방향성을 찾기는 어렵지만 케인즈 모형에서 유추되는 높은 재정승수가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재정정책의 효과가 미약한 것은 구축효과 때문이다. 정부지출의 증가는 증세나 차입을 통해 조달된다. 증세에 의해 조달되는 경우 정부지출의 증가는 민간의 지출과 소득의 감소를 가져오고, 차입에 의해 조달되는 경우에도 실질금리가 인상되어 마찬가지로 민간부문의 지출 감소를 가져온다. 즉, 정부지출의 증가는 민간의 소비와 기업투자의 감소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재정승수를 추정한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재정정책의 구축효과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지출의 증가는 민간 부문의 투자, 소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지출을 증가시켜 생산과 소득을 늘리는 것은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변동이 없거나 증가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지출의 증가가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감소시킨다면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함을 의미한다.
재정정책의 단기적 효과로 실업의 감소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지출의 증가가 실업을 감소시킨다는 증거는 다양한 경험적 연구결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지출의 증가를 통한 고용증가가 거의 대부분 정부부문의 고용증가라는 점이다. 정부부문의 고용증가는 공공부문의 비대화로 이어진다. 재정정책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고용의 증가도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의 비대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대화에 따른 낭비와 비효율이 그리스 등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국가경제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가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결론적으로 케인즈식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하면서 오히려 민간의 투자와 소비 등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공공부문의 비대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은 케인즈식 재정정책을 시행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지출의 증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기업의 투자, 민간의 소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이것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공공부문 비대화에 따른 경제 전체의 효율성 감소, 재정건전성의 악화라는 결과를 맞게 된다. 한국경제의 저성장을 극복하는 방안은 결코 케인즈식 재정정책이 아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wsong@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