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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사관계 법제도를 선진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이 문제는 지난 1996년에 관련법을 제정하고도 번번이 시행 직전에 노사의 반발로 거듭 유예되어 왔다. 정치권이 노동계와 경영계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작년 말 국회는 ‘복수노조 허용’은 내년 7월부터 시행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금년 7월부터 시행하되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한도 안에서 노조 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타임오프의 범위와 한도를 정하지 못했고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를 결정토록 하였다. 이는 정치권이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한 고육지책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근거를 만드는 타임오프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소한 제도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그리고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타임오프제도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각자의 기대수준만 높일 소지가 있었다. 특히 이 제도는 노동계에게는 기득권 유지의 문제였고, 경영계에게는 비정상적인 노사관계 관행 개선의 척도가 되는 문제였다. 이러다 보니 쌍방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타임오프의 한도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었다.
국회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노동계 위원이나 경영계 위원이 탈퇴해 의결정족수도 채우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해 시한 내에 의결하지 못하면 공익위원들이 국회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노동계가 국회에서 논의를 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불러일으켜 결국 위원회 차원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처음부터 노사공익의 합의를 통해서 타임오프 문제를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급 노조활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노사공익이 공동으로 실시하고 노사위원들이 요구안과 수정안을 제시하게 만들며 공익위원들이 조정을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서 위원회 내부 논의의 집중도를 높였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법정시한인 4월 30일 오후부터 마라톤협상을 시작했고 노사공익 합의가 어려워지자 차선책으로 타임오프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5월 1일 새벽 위원 15명 전원 참석 하에 찬성 9명, 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의결했다. 의결된 안은 공익위원의 합의안이지만 실제로는 노사공익위원들에 의한 협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의결안의 골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는 유급 노조전임자를 대폭 축소하면서도 노동기본권과의 균형을 고려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한 해 동안 유급으로 근로시간을 면제받는 타임오프시간을 기업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고 노조 전임자 기준으로 최저 0.5명 수준에서 최대 24명 수준까지 허용하는 것이었다.
중소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유급 노조활동 시간의 축소 폭은 최소화하는 반면, 대기업의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자체 재정으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판단해 현재의 전임자 수를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유급 노조활동 시간의 한도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사업장 단위의 유급 노조활동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장 밖에 있는 상급 노동단체 간부들의 임금 문제는 위원회와 별도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문제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의결 이후에 노정갈등을 야기했고 결국 노사정이 따로 만나 상급 노동단체 간부들의 임금문제는 경영계와 정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타임오프제도의 시간 한도에 대해서 노동계는 너무 적고 사업장의 숫자 등 가중치를 두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너무 많고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부담이 크다고 불만이다. 또 노동계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4월 30일 법정 시한을 넘겨서 결정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 시한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라는 취지의 훈시규정이기 때문에 위원회의 의결 효력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 전문가들의 견해다. 유급노조 전임자 문제를 둘러싼 노사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사후적인 갈등은 예견된 것이지만 미성숙한 협상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현장의 노사 당사자들은 대체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사 합의에 의해서 노조 전임자를 줄이는 사업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조 전임자가 많고 투쟁적인 노동조합이 있어서 노사관계가 대립적인 일부 대기업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러한 사업장들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타임오프제도의 정착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업의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압력에 못 이겨 편법으로 노조 전임자를 인정하면 타임오프제도는 실효성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타임오프제도의 시행을 위한 지침의 마련과 집행 그리고 이 제도의 적용과 해석을 둘러싼 노사 및 노노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제도 정착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이미 노동계 일각에서는 타임오프제도를 무산시키기 위한 집단행동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일반 조합원들조차 여기에 크게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조합원이 많은 노동조합은 자체 재정으로 전임자를 채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면 일반 국민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도 타임오프제도를 악용해 정성적인 노조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타임오프제의 시행을 위한 지침 마련과 법의 집행에 있어서 정도를 지켜야 할 것이다. 노사 자율의 원칙을 침해해 노사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타임오프제도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될 것이다.
타임오프제도가 정착되면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제도의 취지에 맞게 단체교섭ㆍ노사협의ㆍ고충처리ㆍ산업안전 활동 등의 비중을 늘리는 반면, 수련회ㆍ시민단체 활동 등 노동조합의 자체활동이나 외부활동의 비중을 줄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노사가 공동으로 활동하는 노조활동의 비중이 증가해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많아질 전망이다. 또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노조가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관행이 정착됨으로써 노조의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도 제고되고, 결국 노조의 성격도 투쟁조직보다는 조합원들의 복지 등 서비스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ithkim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