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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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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오프 이면합의, 개인비리 넘어선 ‘공공의 적’


지난 7월 1일, 타임오프제가 첫발을 내디뎠다. 1997년 개정된 노조법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 13년 만에 개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전임자에게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한 급여를 주거나 노조가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처벌 강도가 약한 탓인지, 현장에서는 벌써 불법ㆍ편법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자사 이기주의’와 ‘노조 눈치 보기’ 때문에 원칙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기업들은 단협, 이면계약을 통해 민주노총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는 양태다.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제 시행일 이전에 단체협약이 만료돼 노사협상이 필요한 사업장이 1,300여 개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 중 단협이 타결된 사업장은 100여 곳에 불과해 눈치 보기가 만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아차는 타임오프 순항 여부를 가늠할 풍향계가 되고 있다. 기아차의 타임오프 준수 원칙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전체의 타임오프제가 흔들릴 우려가 큰 만큼,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기아차 사측 대응에 모든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일찍이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국가라는 사회계약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정한 국가 이전의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the war of all against all)”이라고 칭하였다. 그것은 현재의 타임오프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조와 담합하는 기업들로 인해 노사관계 무질서 상태가 만연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금속노조는 7월 6일 기준으로 잠정합의한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의 98.8%가 전임자 수를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만의 하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홉스의 무질서의 살벌한 상태가 우리 노사관계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타임오프에 눈치 보기의 원인이 기업들의 타임오프제도의 불법, 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사자치 시대에 노사관계 문제해결을 매번 정부정책과 입법조치에만 매달리는 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이보다는 법과 원칙을 무력화하고 무질서를 생산하는 세력을 배제하고 노사관계 스스로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갈 수 있는 협치(協治)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타임오프제 정착에 있어 홉스의 무질서를 극복하고 협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 교수는 『협력의 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라는 저서를 통해 “충분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상황에서 국가계약을 배신하여 단기적인 이익을 노릴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했다. 액설로드 교수는 소수의 국가계약 준수자가 다수의 탈법 치터(cheaters)들에 둘러싸인 사회가 바로 홉스의 무질서 상태이며, 동시에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같은 함정이라고 정의한다. 즉 기업주 모두가 협력하여 타임오프제를 따르는 것이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지만 혼자만 치팅하여 노조와 담합할 경우 단기이익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모든 기업주들이 치팅한다면 이는 노사관계의 공멸적 균형의 상태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액설로드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함정을 탈출하여 협력균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사회에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타임오프제도와 연관되어 일부 사업주들이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고 개혁된 노사관계의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로 병폐적인 전임자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용자의 철두철미한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주들이 말로는 노사관계가 후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의 사업장에는 전임자를 현행대로 유지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부응하는 표리부동의 태도를 갖는다면 대한민국 노사관계는 절대 개혁될 수 없다. 조합원이 자신의 조합비로 전임자 활동비용을 지급하는 한 조합원의 후생에 부응하는 전임자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비용 효율적으로 노조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불법파업 해고자에게 급여지원을 하느라고 노조재정이 소진된다면 조합원의 인내심도 약화되어 무분별한 불법파업에 대한 자제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타임오프제도 정착은 바로 합리적 노동운동의 정착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둘째는 타임오프 관련 단체협약의 익명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국민들과 소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 공간에 기업명, 전임자 수, 타임오프 관련 세세한 사항 등을 공개하여 ‘거명해서 창피주기(Naming and Shaming)‘의 공시효과를 가질 수 있다. 정부가 공개를 주도할 경우 노사관계에 정부 개입이라는 비판이 우려될 수 있으므로 객관성을 보장받기 위해 학회나 민간 NGO 등 중립적인 단체에서 노사참여하에 조사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터넷에 올린 정보와 실제 은폐된 밀약 간에 괴리가 생길 수 있지만 이는 자동적으로 법을 어긴 것이 되어 근로감독과 행정제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섣불리 허위보고할 기업주는 많지 않으리라 판단된다.


타임오프제는 낡고 불합리한 관행을 버리고 선진 노사관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기업주들도 어느 정도의 진통과 갈등은 각오해야 한다. 홉스적인 무질서를 야기하고 노사관계 선진화에 저항하기 위해 투쟁하는 세력의 준동에 기업주들마저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곤란하다. 한 기업이 편법을 택하면 다른 기업들로 도미노처럼 번지기 마련이다. 이면합의는 돈으로 노사관계를 사는 ‘검은 거래’이자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만성적 후진화를 위해 기업주들이 투자하는 형국이다. 전임자를 과거와 같이 요구하는 파업이 벌어져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맞서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오늘날 일본의 노사관계가 개혁된 것도 바로 전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기업주들이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개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일본의 다수 사용자들이 야미(은폐된) 전임의 유혹에 빠졌다면 일본의 노사관계는 현재 우리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개혁 비용은 남이 지불하고 자신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노사관계 후진성이나 탓하는 ‘말만 앞세우는 지지(Lip Service)’에 무임승차하는 태도로는 노사관계 개혁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모든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분담해야 하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타임오프제 정착이든 노사관계 개혁이든 예외가 없다.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trustcho@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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