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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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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배럴식 국책사업의 함정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지역 선정 문제가 ‘특정지역의 표심 잡기용’으로 발전하면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2004년 과학기술계의 요청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2009년 초 종합계획을 확정하며 2009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원래 세종시로 입지가 선정될 분위기였는데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 충청권을 비롯한 경기도ㆍ영남권ㆍ호남권 등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과학벨트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동남권 신공항은 2025년 개항을 목표로 부산 가덕도와 밀양 하남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광역시를 비롯한 5개 시도가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다.


지역구 선심사업 위해 중앙정부의 예산을 남용


포크배럴(Pork-Barrel)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돼지 구유통’이다. 미 의회정치의 예산 전횡을 비난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1) 정치인들이 지역구 선심사업을 위해 중앙정부의 예산을 남용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가급적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할당하려고 한다. 어차피 중앙정부의 예산은 주인이 명확치 않은 돈이라,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는 의정보고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정치인들에게는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주민으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확보해 선거에서 승리확률을 높이고자 포크배럴적인 사업을 유치하려는 유인이 강하다. 다리를 건설하거나 도로를 새로 내거나 지자체 시설을 확장하는 등 포크배럴적인 사업의 예는 많다. 심지어 국회에서 국가 차원의 중요한 법안은 장기간 표류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쓰더라도 예산은 매년 처리되고 있다. 이는 정치인들이 중요 법안처리보다 제 지역 챙기기 예산안에 대한 성과를 지역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쉽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2)


문제는 이러한 포크배럴식 국책사업이 자원배분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을 잉태하는 데 있다. 적지 않은 지역사업이, 실제 지역주민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거나, 또는 필요 우선순위에서도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일단 예산을 따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후관리 및 유지가 엉망인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니지도 않는 육교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거나 차량 이용량이 매우 적은 지방고속도로 등의 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경제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선심성 지역사업으로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낭비할 수 있는 것이다. 수조 원 예산 규모의 과학벨트사업과 신공항에 대해서도 정작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디에 입지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그 성공은 요원할 것이다.


소수에게 집중된 이익과 다수에게 분산된 비용 정책


포크배럴식 정책사업의 비용은 중앙정부의 예산, 즉 절대다수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된다. 그런데 그 사업의 이익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지역 주민에게로만 국한된다. 즉 ‘소수에게 큰 이익이 집중(concentrated large benefits to the few)’되는 반면 ‘다수에게 매우 작은 비용이 분산 부과(diffused small costs to the many)’되는 정책이다. 심지어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정책사업의 비용이 정책사업의 귀속이익보다 큰 경우에도 포크배럴식 정책사업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익을 보는 소수가 아주 적극적으로 행동할 유인이 있다. 비용을 부담하는 다수에게는 아주 불투명하고 피부로 느끼기에 힘든 부담이 아닌 반면, 이익을 보는 소수에게는 그 편익이 직접적이고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포크배럴 정책의 유혹이 늘 존재한다.3)


과학비즈니스벨트나 동남권 신공항 조성과 같은 정부의 국책사업의 편익은 세금을 내는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기보다는 선정되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보다 직접적인 편익을 줄 것이다. 이러한 국책사업 선정을 통해 정치권은 표를 계산할 것이다. 그 계산은 정당 간에 다르고, 심지어 정당 안에서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관련 지역권의 국회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당론도 고려하겠지만 일단 자신의 지역구에서 보다 직접적인 지지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뿐만 아니라 사업권을 따내려는 관련 단체나 조직으로부터 금전적 지원(pecuniary support) 또는 비금전적 지원(non-pecuniary support)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무지의 투표자(Rationally ignorant voter)가 되지 말아야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자는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다른 투표자들의 찬반이 정확히 대등한 상태일 때 자신의 표가 영향을 줄 것인데, 그럴 상황은 거의 오지 않는다. 즉 선거에서 자신의 한 표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줄 확률은 거의 영(zero)에 가깝다. 따라서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즉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학비즈니스벨트나 신공항과 직접 관련이 없는 국민들로서는 이러한 사업의 이익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을 계산할 유인이 약하다. 그 사업비용이 자신이 내는 세금에서 충당될 것임에도 말이다. 설령 정부의 국책사업이 잘못된다 한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 비용을 분담할 테니 말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는 수조 원의 국민세금이 소요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국책사업의 입지 선정은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반국민들은 이러한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고, 참여할 유인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국책사업의 입지 선정은 지역 이해나 정치적 역학이 아닌 과학과 경제논리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보아왔던 선심성 예산 낭비의 포크배럴식 국책사업의 또 다른 예를 목격할 가능성이 높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y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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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kipedia에 따르면 동일한 용어로 오스트리아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북유럽에서는 ‘election pork’라는 용

어로 사용되고 있다.

2) 2010년 12월 12일 중앙선데이 제196호의 글에서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의 인용 참고.

3) 미국의 경우도 소규모 지방도시에 교량, 공항, 항구 등을 건설할 때 연방정부의 예산을 남용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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