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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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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 FTA, 국민적 합의 거쳐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우리나라는 2003년 9월 노무현 정부 때 처음으로 FTA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었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FTA를 평가해보면 정부의 정책적 지향점이 거대ㆍ선진 경제권과의 FTA 네트워크 구축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우리 정부가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 배경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 저하와 수출 시장 선점을 통한 수출 확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미국과 EU 등 선진 경제권과의 FTA는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보았고 이 때문에 국책연구소의 FTA 경제효과분석에서 ‘FTA를 통한 매년 1%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가정을 무리없이 포함시킬 수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FTA 상대국 선정기준을 살펴보면 경제적 타당성과 함께 ‘정치ㆍ외교적 함의’라는 기준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학계 혹은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따라서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FTA는 철저하게 경제적 타당성을 중심으로 체결되었고 이에 기초하여 협상이 이뤄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FTA 대상국 선정에 있어서 경제적 이익뿐만이 아니라 자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상대국의 지지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이나 미국을 견제하며 ‘범중화경제권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중국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선의의 무시’ 정책 취할 것으로 보여


중국과의 FTA 협상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기존 방식대로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정치와 외교 그리고 안보라는 다면적이고도 전략적인 접근을 꾀할 것인 지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이나 EU와는 상당히 다른 협상 상대이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미국이나 EU와는 달리 중국과의 FTA를 통해 경제전반의 생산성 향상이나 제도 개혁 혹은 선진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특히 많은 개도국과의 FTA 사례가 보여주듯이 중국은 비관세장벽이 높고 FTA를 통해 국내 제도, 법 체계, 상관행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설령 바꾼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크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보이는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권, 반덤핑분야는 더욱 그렇다. 중국이 FTA 체결로 한국에서 누릴 혜택이 가시적이고도 단기적이라면, 우리가 중국서 누릴 혜택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고 중장기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둘째, 중국은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한ㆍ중 수교 당시에도 논란이 컸지만 중국과의 수교는 명백하게 우리에게 위기보다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교 이후 한국의 대중국 경제적 의존도의 심화 혹은 한ㆍ중 경제관계의 발전이 중국의 대 한반도 정치ㆍ외교적 정책의 변화를 초래한 명백한 징후는 최근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 혹은 일각에서 ‘중국과의 FTA를 통해 북한의 급변상황 시 중국의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진단과 논리는 현실을 도외시한 우리의 희망사항 (wishful thinking)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한과 여전히 혈맹관계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역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의존성의 심화는 향후 ‘중국의 대 한국 영향력 증대’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의 FTA를 추진하는 데 대하여 소위 ‘선의의 무시 (benign neglect)’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때 미국 혹은 일본이라는 전통적 우방을 이용한 대중국 협상 레버리지 효과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셋째, 중국은 우리의 이웃나라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그나마 우리가 외국산에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신선 야채와 냉장 과일이나 활어 등에도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다. EU와 미국과의 FTA가 이행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FTA가 발효된다면 우리 농수산업에 미치는 충격이 지금까지의 FTA를 모두 합친 것 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이 같은 충격을 감내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늬만 FTA’로 전락할 가능성


정부는 중국과의 FTA 협상을 2단계, 즉 농산물 등 민감분야를 먼저 협상한 후 본 협상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단계에서 민감 분야를 상호 상당부분 제외한다고 하면 한ㆍ중 FTA는 WTO+가 아닌, 즉 다자간 협상과 비교해서 크게 자유화의 진전이 없는 협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우리로서는 한ㆍ중 FTA를 포괄적이고도 자유화 수준이 높은 FTA로 끌고가야 하는데, 이 경우 중국이 우리가 원하는 분야, 예를 들어 통신, 금융, 보험 등의 서비스 분야와 지재권 등에서 수준 높은 개방을 약속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ㆍ중 FTA는 소위 ‘무늬만 FTA’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설령 포괄적이고도 자유화 수준이 높은 FTA가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중화경제권으로의 급속한 편입이 몰고 올 파급효과나 효과적인 이행방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ㆍ중 FTA 추진은 외교ㆍ안보적 함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충분히 거쳐 전략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국민적 합의가 모아져 한ㆍ중 FTA를 추진하기로 한다면, 우리로서는 원하는 분야와 의제를 명확히 설정하고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의 협상인 경우 언제든지 깰 수 있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ㆍ중 FTA의 경제적 효과가 외교·안보적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 만큼 명확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허 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hury@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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