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루카스(Robert Lucas, Jr.)가 우리경제를 필리핀과 비교하면서 기적이라고 일컬은 논문을 발표한 것이 1993년이다. 그의 논문 제목은 “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70년대 10.3%로, 매 7년마다 실질 GDP가 두 배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1980년의 비상상황을 제외하면 80년대 평균 경제성장률은 9.8%로 70년대에 버금가는 성장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루카스가 기적이라고 부를 때 노벨상의 석학조차 눈치 채지 못하게 우리 경제는 서서히 기적을 멈추고 있었다. 1989년부터 2008년까지 20년 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평균적으로 매년 0.24%씩 감소하고 있었다. 같은 기간 우리 경제의 추세(잠재) 성장률이 5% 정도 추락한 것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로 70년대 또는 80년대와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 기간 동안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등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있었음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우리 경제가 이제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였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경제의 진행경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그것과 빼어 닮았다는 점이다. 이차대전 이후 일본경제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1956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일본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5.5%로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실질 GDP성장률은 4년 반에 한 번씩 배로 증가하였다. 다시 말해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의 GDP는 약 네 배 반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GDP 증가율은 1976년부터 1998년까지 평균적으로 매년 0.46% 감소하였다. 23년 동안 일본의 추세(잠재) 성장률이 물경 10% 이상 감소한 것이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의 평균성장률은 –0.02%에 머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고속성장은 풍부한 노동 때문에 성립했던 전형적인 내생적 성장
놀랍지 않은가 일본과 우리의 성장경로가 어찌 이리도 닮았는지!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허락된 지면이 너무 짧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추세로 볼 때 한국과 일본의 성장률 하락은 경제의 구조적인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에 대하여 1980년대 후반 자산시장 거품이 붕괴되어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아직도 거품붕괴론과 일본의 장기불황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은 데이터를 잘못 읽은 소치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1950년대 이후 일본의 성장률을 시간에 대하여 그려놓고 보면 추세성장률의 하향화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거품에 따라 성장률이 평균적으로 잠시 5%~6%대에서 몇 년 머문 적은 있으나 거품이 하향추세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1980년대 후반의 버블은 일본의 성장률 추세하향화의 근본 요인이 아니다. 결국 일본의 성장률 하락추세는 구조적이고 실물적인 요인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성장이 저성장으로 이행하는 변화는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노동시장이라고 본다. 전후 일본이나 경제개발 초기에 우리나라에는 실물자본 부족으로 인한 유휴인력이 존재하였고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농촌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업 배후인력이 존재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 실질임금의 상승 없이 노동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의 생산성이 체감하지 않는다. 축적되는 자본과 관계없이 자본의 생산성이 체감하지 않으니 투자가 계속하여 크게 일어나고 그 결과 고속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근래 강조되고 있는 전형적인 내생적 성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풍부한 노동 때문에 고속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함께 잉여 노동력이 소멸되면 실질임금의 상승과 함께 자본의 생산성이 빠르게 하락하고 투자와 경제 성장률 또한 빠르게 감소한다. 일본과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대동소이하였으며 그 결과를 데이터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대만이나, 이차대전으로 자본이 크게 파괴된 독일, 프랑스, 이태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후에 매우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여담으로 이와 같은 추론을 중국의 고속성장에 대입하여 보면 의미 있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최근 중국의 실질임금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이 빡빡해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중국의 고속성장이 머지않아 멈추고 저성장으로의 이행이 시작될 것임을 함의한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추세로 성장률이 하락하는 경우에 단기적인 경제부양책은 정책실패만을 초래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성장으로의 이행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일본의 대응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추세 때문에 성장률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연구 개발과 효율적인 경제체제로의 구조개혁과 같은 장기적인 정책을 통해 성장률의 추세적인 하락을 막고 장기성장률을 제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단기적인 부양책을 통해 장기적인 추세성장률을 높이고자하는 전혀 엇박자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게다가 정책도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크고 확실하게 시행한 것이 아니라 찔끔찔끔 작고 길게 시행함으로써 나라 빚은 산처럼 증가하고 이자율은 0%로 하락하였으나 정책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정책실패를 초래한 것이다.
정책에 있어 우리 정부도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찔끔찔끔 재정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정책의 효과는 없고 나라 빚만 증가시키는 실패의 길을 가고 있으며 한국은행은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이 4대강 사업은 정책실패의 전형으로 장기성장률이 좌우되는 결정적인 시기에 기회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4대 강 사업 자체의 잘 잘못을 여기서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 몇 십 조원을 연구개발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증대와 같은 경제의 구조개혁에 투입하였을 때의 장기효과를 왜 생각하지 못하였느냐는 말이다.
결국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는 장기적인 성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응에 따라서는 지금의 저성장이 지속될 수도 있고 보다 높은 추세성장률을 회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가부간에 결국 지금 시작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결정이 날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경제적인 문제가 장기적인 성장률 하락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박근혜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추세성장률 회복을 통해 많은 경제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조장옥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choj@sogang.ac.kr)
--------------------------------------------------------------------------------------------------------------------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