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1950년대 아프리카의 가나보다도 못 살던 한국이 짧은 기간 동안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선진국과 국제기구의 원조로 살아가던 한국이 이제 미국ㆍ일본ㆍ영국ㆍ독일 등 22개 회원국 및 EU 집행위원회(EC)로 구성되어 있는 선진공여국 모임인 DAC에 가입한 것이다. 세계가 모두 깜짝 놀랄 일을 한국이 해낸 것이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해외원조 선진국인 북유럽 국가들, 여타 DAC 회원국에 비해 규모 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GNI 대비 공적개발원조(ODA) 비중은 2009년 0.1%(OECD 국가 중 26위)로 국제사회 권고 수준인 0.7%에도 한참 모자라며, DAC 회원국 평균 0.3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해외원조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로선 주어진 예산을 잘 활용하여 최빈개도국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해외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화할 만큼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한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받으려는 개도국의 다양한 지원 요청이 잇따른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최근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하는 국제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발주하고 있다. 필자도 캄보디아ㆍ카자흐스탄ㆍ요르단 등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나 경제개발을 위한 통상정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먼저 우리의 경제개발정책이 최근의 국제통상질서 및 규범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70~1980년대 적극적으로 활용한 수출보조금은 현재 WTO 규범상 금지된 보조금(그러나 최빈개도국의 경우 수출보조금은 금지되지 않는다)이며, 수출과 수입 시 달리 적용되던 이중(Dual) 환율제도 역시 지금 시행된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 또한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진행된 한국의 경제개발 단계별 성장전략 역시 현재의 국제통상환경이나 그 나라의 배경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섬유ㆍ의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섬유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중국의 경쟁력에 맞서야 하며, 단순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내수시장의 규모, 부실한 사회간접자본의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한다.
또한 특정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추천하는 것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의 지원사업만이 지니는 문제는 아니고 세계은행, UNDP, IMF 등의 사업도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일반적으로 대상 국가의 기본적인 경제 현황, 인구구성, 역사, 문화 등을 다양하게 검토한 후 전략산업을 추천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 역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부 국제기구의 개별 보고서에서 A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배경 및 환경을 분석하여 X라는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권고하였다. 그러나 해당 국제기구 또는 다른 국제기구에서 비슷한 환경을 지닌 이웃 국가 B, C 등에게도 동일한 산업을 추천하였는데, 결과는 이들 국가가 포함된 지역에서 해당 상품의 과잉생산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여 X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 국가 모두 큰 손해를 보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최빈개도국에 대해 여러 국제기구마다 기본적인 분석이 진행된 연구결과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부패(corruption)’와 ‘열악한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이다. 정부와 사회가 부패되어 있다면 아무리 국제사회가 지원해 줘도 그 나라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개발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결국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장(sustainable growth)은 그 나라의 ‘사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원조 없이 어떻게 자체적으로 전략을 수립하여 발전할 수 있는가,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첨단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가,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올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등의 문제는 결국 인간개발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개발의 중요성은 우리의 경제개발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출주도형 성장전략, 해외원조 및 차관을 우리의 의도대로 활용한 정책 등 경제적 요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우리 기성세대의 “잘 살아보자”는 인식의 전환이다. 술과 도박에 절어 있던 할아버지ㆍ아버지 세대가 “가족을 위해,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바치자”라며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산물이 우리의 그토록 소중한 ‘경제발전과정’이다.
이와 같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은 지속가능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해 WTO 가입협상 중인 리비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리비아의 노동정책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비아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은 최소 30% 이상의 현지인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고용된 현지인은 모두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 근무를 선호했으며, 사막 건설현장에 배치될 경우 과감하게 그 직장을 포기하였다. 카다피 정권이 막대한 오일머니로 실업보조금을 주므로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단언컨대 국민이 ‘일할 의욕’이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단순히 실업보조금을 주기보다는 국민의 노동유인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나라에 정말 필요한 것은 외국인직접투자(FDI)나 WTO 가입이 아니라 국민에게 일할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 전수사업에서 고려하여야 할 또 다른 점은 글로벌화(globalization)이다. 전 세계가 글로벌화하고 있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추세를 비껴 나갈 수는 없으며, 오히려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러한 글로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글로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였다. 다른 나라가 시장을 열고 우리에게 수출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체제를 글로벌 경제체제에 연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이슈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경험하였다. 통상이슈가 극단적인 국내 정치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글로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은 아직도 글로벌화가 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화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며, 글로벌화의 진행은 경제는 물론 국제관계, 사회, 문화, 기술발전 등 다양한 분야와 상호 연관되어 있어 그 효과를 사전적으로 모두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보다 효율적인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전략과 관계된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을 통해 우리의 경제개발 및 국제화 전략에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제개발 경험을 변화된 국제통상환경 및 질서에 맞게 전수한다는 것은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 전수사업을 통해 한국경제와 사회가 지나온 경제발전 역사의 길을 자기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자성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와 사회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강문성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mkang@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