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란 어떤 존재인가. 공무원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공복(公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선출직이 아니라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임명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자신이 공복 노릇을 잘하겠다고 진정으로 호소해서 자격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다는 것이 공무원의 본질이다. 만일 공복이란 말이 어렵다면 ‘심부름꾼’이나 ‘머슴’이라고 하면 된다.
공무원이란 어떤 존재인가?
물론 공무원을 지원하는 개인과 일반기업을 지원하는 개인 사이에 소명의식이나 직업의식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공무원이든 일반기업인이든, 지원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갓 보수를 받기 위한 생활방편에 불과하다. 공무원시험이 있을 때마다 지원율이 수백대 일로 몰리는 것은 국민의 손이 되고 발이 되겠다는 소명의식보다 하루하루의 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직이 인기인 것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전한 직장이며 일반 사기업처럼 구조조정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무원의 소명의식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공무원의 소명의식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공무원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핵심적 쟁점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들어 민주노총 가입에 반대하고 있고, 공무원 노조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가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공무원도 일반시민들과 똑같이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데 절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 절제 문제와 관련, 자신의 정치적 권리가 침해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한 대통령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공무원의 직분은 그 위치가 상급이든 하급이든 관계없이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가치배분의 특징은 공적 결정을 하고 그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에 있다. 일반 구청이나 시청 공무원들이 주차단속을 하고 숙박업소에 위생시설을 점검하며 혹은 소방서 공무원이 소방시설 점검을 하는 경우를 보라. 공무원들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정치나 정책문제에 있어 정파적 성격을 갖는 정당의 입장과 달라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강제력의 권한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중립성이란?
우리는 여기서 공무원의 중립성을 소극적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소극적인 태도는 양자 간의 다툼이 발생했을 때 누구편도 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립성은 양자 간의 싸움을 말릴 때 필요하다. 싸움을 말리겠다는 중재자가 처음부터 어느 한 편을 두둔한다면 어떻게 또 다른 이해당사자가 승복하겠는가. 그러나 이에 비해 적극적 의미의 중립이란 어느 누구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공동선(共同善)과 공익(公益)의 관점에서 사물이나 정책을 평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공무원을 두고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지만 일반적 의미의 심부름꾼과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심부름센터는 상대하는 주인이나 고객이 하나다. 따라서 한 사람의 주인이나 고객의 말대로 하면 심부름센터의 업무는 끝난다. 그러나 공무원이 섬겨야 할 국민의 범주는 여러 가지다. 국민들의 요구는 그 다양성으로 인하여 상호 간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상호모순적인 관계를 이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 것인가. 여기서 공무원은 엄숙하게 공동선과 공익을 생각해야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정파적 선’을 선택해서는 곤란하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공무원이 공동선을 생각하며 행동할 때 진정한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공무원 노조
물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다. 공무원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할 권리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표현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집단을 통해서만 표현의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 자체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원래 표현의 자유란 다수의 의견이 지배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문제제기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존재이유를 가진다. 즉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 노조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민노총 가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편 일부 민노총 가입 옹호자들은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인정한다며 공무원 노조의 민노총 가입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한국 사회의 쟁점을 접근하는데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외국 사례를 인용하는 것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 정치적 풍토와 문화는 물론 시민들의 인식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로비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외국에서 로비에 관한 문제는 폭넓게 허용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로비스트’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실눈을 뜨고 바라본다. 그렇다고 해서 로비스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의 정치ㆍ사회ㆍ문화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로비스트하면 부패나 뇌물 고리를 연상시켜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사회에서 인정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고 또 서구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는 것도 정당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토양에 따라 귤도 되고 탱자도 되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의 중립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한국 사회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최고위 공무원인(?) 대통령이 어느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은 모든 국민들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혹시 대통령이 믿는 종교가 특권을 누릴까 하는 우려에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자신에게 종교에 대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종교 간의 중립성을 지키겠다고 다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처럼 중립성이 한국의 공무원들에게 있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면 외국의 사례를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들여 정당화시켜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의 소명과 위상이 어떤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결정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박효종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