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2006년 4월 무역조정지원제도(Trade Adjustment Assistance, TAA)가 도입되었고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TAA법은 FTA 이행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것이 확실한 기업과 근로자 등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지금까지 6개 기업이 TAA를 신청했고 이 중 5개 업체가 TAA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수치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현재 이행 중인 FTA로 인한 수입품 급증에 따른 피해가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TAA 기준이 6개월간 매출액 혹은 생산액의 25% 감소 규정이 기업 현실에 비춰 지나치게 엄격하여 기업들이 신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동안 두 차례 개정을 거쳐 지원범위와 기준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TAA 활용도가 낮고 기업의 관심도 적은 편이다.
오는 4월 한-EU FTA가 공식 서명되고 빠르면 7월부터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EU FTA는 우리의 첫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가 될 것이고 한-미 FTA에 버금가는 경제효과가 기대되며 특히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FTA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EU는 독일과 같은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구비한 공업국에서부터 최근 가입한 구동구권 국가까지 다양한 27개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물품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이익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금까지 이행된 FTA와는 달리 우리나라 산업에 따라 구조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현재의 TAA로는 EU와의 FTA 이행으로 발생하는 구조조정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한-EU FTA 비준과정에서 TAA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매출액 혹은 생산액이 25% 이상 감소해야 무역조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은 사실상 기업들의 TAA 활용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TAA법에 대한 제2차 개정에서 25% 매출감소 기준을 하향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기준을 완화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재정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FTA 관련 산업지원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2004년 이행된 한-칠레 FTA 농업 지원으로 증폭되었다. 한-칠레 FTA의 보완대책으로 국회와 정부는 농업지원특별법을 제정했고, 협정 이행 이후 8년 동안 FTA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연간 2,000억 원 정도의 농업지원 예산을 집행하도록 법제화함으로써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TAA는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했으나 지원기준 면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매출이나 생산이 12개월간 떨어졌는가를 확인하긴 하지만 실제로 무역 피해 여부 혹은 피해 가능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피해 여부는 상무부가 구축한 데이터와 분석방법으로 결정한다. 반면 우리는 매출액 25% 감소 여부를 확인하는 정량적인 기준 충족을 1차적인 요건으로 하고 무역피해 입증책임을 무역조정지원을 신청한 업체에 부과하고 있어 사실상 중소기업의 TAA 신청을 막는 등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중소기업관련 재무자료 분석에 따르면 매출액이 25% 감소한 기업은 사실상 파산상태에 놓여 무역조정지원 결정을 받더라도 지원이 너무 늦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매출액이 25% 감소한 기업에 대한 TAA는 정책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의 TAA는 ‘사후 약방문식 정책’이 되기 십상이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현행 25%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TAA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EUㆍ미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이행되기 이전에 TAA제도를 현실에 맞게 보완ㆍ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먼저 지원기준을 매출액 10~15% 감소로 낮추고, 기준완화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1962년 TAA 제도를 도입했던 미국도 초기에는 매우 엄격한 지정요건 하에 TAA를 운영했으나 12년 후인 1974년에 지정요건을 대폭 완화했고, 현재는 무역조정기업 지정요건을 ‘매출액(또는 생산액)이 5% 이상 감소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5% 이상 감소’ 요건을 적용하는 이유는 매출감소 요건을 과도하게 높여 적용할 경우 도산이 임박한 기업에 대한 정책개입의 타당성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행정부담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신속ㆍ용이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이 TAA 정책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TAA 지원기준을 완화시키되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직접적인 무역피해 여부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매출액은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매출액 감소율이 지원기준에 다소 미달하더라도 무역피해가 확실하면 TAA를 해주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무역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비록 현재의 매출액 감소가 기준보다 낮더라도 TAA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다.
또 FTA와 무관하게 무역피해가 발생하는 업종은 TAA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외국산 수입품이 이미 국내시장을 잠식한 산업에 속한 기업은 무역피해 여부에 관계없이 TAA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입품이 50% 이상 시장을 점유한 상품관련 기업에 대해서는 무역조정지원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TAA법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는데 운영지침에라도 이러한 제한사항을 추가해야할 필요가 있다.
무역조정지원 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융지원보다는 구조조정 컨설팅 제공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현재 소요비용의 80%까지 2,400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고 있으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기업수요에 맞는 컨설팅 제공을 위해서는 지원한도를 높이되 컨설팅 비용 중 수혜기업의 부담비율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3만5000달러까지는 기업의 부담을 25%로 하되 이 이상의 소요비용에 대해서는 50%를 기업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국제통상학회 회장, inkyo@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