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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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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의 시작과 끝


로버트 졸릭(Robert B. Zoellick)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7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각국의 경쟁적인 환율방어는 과거 1930년대의 보호무역주의를 다시 초래할 수 있으며, 대공황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 IMF 총재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너무 호전적인 용어라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1985년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기 위해 이뤄졌던 ‘플라자 합의’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4년 이후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했던 일본 역시 엔화 절상을 막기 위해 6년 만에 외환시장 개입을 재개했으며, 동아시아 국가는 물론 브라질도 자국 통화 절상을 방어하기에 나섰다. 이처럼 주요국이 거의 같은 시기에 환율을 관리하고 나선 것은 분명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환율전쟁 논의의 발단


우선 최근의 소위 환율전쟁의 발단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의 중국 위안화 절상 압력과 그에 대한 중국의 반대 입장을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올해 초부터 미국은 2000년대 이후 줄곧 이어져 오던 위안화 절상 논쟁에 대한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올해 2월 초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상원의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저평가된 중국 위안화로 인해 미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1) 이러한 미국 측의 위안화 절상 압박에 대해 중국 측은 위안화 환율 문제는 현재의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반박해 왔다.


환율전쟁의 또 다른 원인은 글로벌 달러 약세, 즉 세계 주요국 통화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달러가 각국으로 하여금 환율 걱정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2000년대 들어 지속된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 설상가상으로 2008년과 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을 위해 엄청난 달러가 풀려 달러의 약세는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 각국은 달러대비 강세가 되어버린 자국통화의 가치를 낮은 수준에서 방어하고 나서는 형편이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요인은 미국과 중국 간 위안화 절상 논쟁이라고 본다.


불확실한 환율방어 의도


따라서 우선 위안화 절상 문제부터 따져보자. 그렇다면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와 위안화 환율은 미국 측의 주장대로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중국 측의 주장대로 관련이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위해서는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나,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와 위안화 환율 간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의 두 그림은 2000년 이후 미국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과 달러당 위안화 환율의 추이를 나타낸다. 먼저 <그림 1>의 미국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백만 달러 단위이며 월별 수입금액으로, 계절성을 조정한 자료이다.


<그림 1> 미국의 대중국 수입


2008년과 2009년 중 일시적으로 미국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잠시 감소하는데, 이는 환율과 상관없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00년 이후 달러당 8.3 위안에서 맴돌던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2006년 하반기부터 절상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지면서 2008년 후반기 들어 달러당 6.9위안 아래로 떨어졌다.


<그림 2> 달러당 위안화 환율


<그림 2>를 보면 2005년 7월부터 2008년 7월 기간 중 위안화 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그림 1>에서와 같이 계속해서 늘어났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림 1>과 <그림 2>는 위안화 평가절상이 미국의 대중국 적자 해소에 기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과 EU 등은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에 불만을 가지는 것인가? 그러한 불만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 EU의 수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중국이나 동아시아 통화가치의 절상이 당장에 자국의 무역적자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입장만 반대이지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통화가 빠르게 절상되는 국가이다.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은 당장 나빠지기는 하지만, 결코 해외 수출 시장에서 이들 수출기업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2010년에도 한국은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먼저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한국의 경우 수출 담당 비중이 큰 기업들이 모두 대기업으로 환위험에 대해 상당히 준비되어 있는 편이다. 또한 이들 한국 수출 대기업들의 해외 경쟁력 역시 과거와 달리 기술과 품질로 승부하여 점유율 역시 원화 절상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결국 통화 절상을 요구하는 측도 통화 절상을 요구받는 측도 환율이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거나 아니면 과대평가하는 척 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불균형은 환율이나 무역수지가 아니라 산업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적 비교우위에 따르면 노동이나 자본의 상대적 결합비율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만들어 교환하여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무역구조를 보면 처음에는 노동이 싸고 풍부한 중국에서 노동집약적 상품을 만들다가 나중에는 자본집약적 상품까지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은 빈약하고 노동만 풍부하던 중국으로 자본까지 이동하여 오늘날에는 중국이 반드시 노동만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고 얘기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중국의 원자재나 부품을 다른 나라에서 조립하던 가공무역 구조도 이제는 완제품까지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결국 서비스를 제외한 상품무역에서 중국은 유일한 지구촌의 공장이 되어가고 있다.


주요국의 외환시장 개입


일본은 2004년 이후 중단했던 외환시장 개입을 다시 시작했고, 브라질 역시 만테가(Guido Mantega) 재무장관이 “미국 달러화의 지나친 약세가 브라질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헤알화의 과다 절상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적극적인 환율방어를 시사했다.2) 브라질의 경우 대부분 1차 원자재를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품에 비해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도 핵심 부품 및 중간재를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엔화 약세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크지 않으리라고 본다. 일본은 이미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완제품 수출품목에 대해서도 현지 생산화를 마친 경우가 많아서 역시 환율에 따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환율전쟁의 또 하나의 배경인 글로벌 달러 약세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자. 자국 통화가 달러에 대해 강세가 된 것은 한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주요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자국의 수출 가격경쟁력을 위해 환율방어에 나선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결국 일본, 브라질 등 다른 나라들의 외환시장 개입은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중국으로 하여금 위안화를 절상토록 압박하는 효과 외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요국의 경쟁적인 환율방어는 미국으로 하여금 환율전쟁의 발단으로 중국을 탓할 가능성만 높여 줄 것이다.


주요국은 미국만큼 대중국 무역적자가 심각하지는 않지만 자국 역시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수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이라는 미국의 단골 메뉴를 자신들도 사용하고 싶어 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미국은 중국에게 위안화 절상을 직접 요구하는 반면, 일본이나 브라질과 같은 국가들은 중국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신, 아예 자국통화 가치를 낮게 가져가도록 환율개입에 나선 것이다. 그러다보니 위안화 절상을 목적으로 중국의 환율개입을 비난하던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다른 동병상련 국가들마저 비난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환율전쟁 이후 바람직한 각국의 자세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제를 밖에서만 찾으려하지 말고, 현재의 무역구조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 역시 환율 문제를 자국 자존심과 연결 지어 반응하기보다는 현재의 무역구조에 의한 불가피한 결과임을 다른 국가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중장기적 차원에서 변동환율제 도입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위안화 절상 탓이 아니라는 중국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안화 가치가 적정하다는 중국의 의견에도 문제가 있다. 통화의 가장 객관적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당국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금융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동환율제 도입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환율전쟁, 오래가지 못할 것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세계에 풀린 엄청난 달러에 대해 주요국의 통화 대비 달러가치 약세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달러 약세에 반해 9월 이후 한국 원화가치는 5.7%,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1.3%, 태국 바트화는 4.3%, 중국 위안화는 2% 절상됐다.3) 엔화 역시 달러화 대비 지난 15년 동안 가장 크게 절상되었다. 환율방어 시도 자체가 무역수지를 개선할 수 없는 현재의 무역구조 속에서 각국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일단 환율방어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결국 그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말만 무성한 환율전쟁이 부질없다는 것을 조만간 대부분의 국가들은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이 환율전쟁의 끝이 될 것이다.


송정석 (중앙대학교 상경학부 교수, jssong@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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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향신문 2010년 2월 4일자 인용

2) 한국경제 2010년 9월 28일자 인용

3) 이데일리 2010년 10월 13일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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