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금년 7월부터 미국 주도의 TPP 협상에 참여하기로 했다. 또한 중국은 끝까지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돌연 TPP 참여를 검토하고 나섰다. TPP가 세계 총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무역블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대국 한국의 TPP 불참은 어불성설이다. 국내에서는 TPP 가입여부가 아닌 참여시점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TPP 참여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과 TPP가 타결된 이후 나중에 가입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실익과 전략적 활용도를 고려하면 TPP 조기 참여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우선, 대외 경제적 측면을 보자. TPP에 조기 참여하든 나중에 가입하든 한국은 현재까지 교착상태에 있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및 캐나다와 FTA를 동시에 타결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TPP내 통일원산지규정과 다양한 규범의 도입에 따른 경제활동의 효율성과 투명성 증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TPP 협상에 조기 참여하는 경우와 나중에 가입하는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TPP 협상 과정에 참여할 경우, 우리의 취약분야나 경쟁력 보유 분야 등을 고려해서 상품·서비스·투자 자유화나 규범제정을 우리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모든 협정 내용이 정해진 이후 나중에 가입하게 되면 이러한 기회는 크게 축소된다. 가능하면 조기 참여로 우리 기업들에게 보다 유리한 통상환경을 마련해주고 국내 민감산업의 피해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TPP가 타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투자자유화, 규범제정까지 고려하는 TPP, 국내 경제 체질 개선의 동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국내 경제로 눈을 돌려 보자. 신정부는 성장 잠재력의 저하, 내수의 탄력 약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조경제와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중점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미 기득권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개혁을 통해 이러한 과제에 대한 성과를 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대외협정의 구속력을 국내 경제 체질 개선의 동력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TPP는 이에 매우 적합한 협정이라는 것이다. TPP는 지재권, 경쟁정책 등 높은 수준의 규범을 협상대상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유용한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TPP는 높은 수준의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서비스 산업에 ‘성장 촉진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PP 참여를 통한 서비스 산업의 폭넓은 개방은 선진 기업의 외국인직접투자를 유발하여 국내 서비스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생산과 고용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창조경제와 서비스산업 활성화 시기를 조금이라고 앞당기고자 한다면 가급적 조기에 TPP 협상에 참여하면서 국내 제도 개선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TPP 조기 참여가 바람직하다. 중국과의 FTA를 통해 우리의 경제적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FTA에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와 규범 분야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분야를 FTA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TPP 조기 참여 카드’를 꺼내 든다면, 한국은 중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TPP 참여는 당분간 TPP 참여가 어려운 중국을 조급하게 만들 것이고,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한중 FTA 협상에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처럼 TPP 조기 참여의 경제적·전략적 실익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TPP 참여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TPP 대용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RCEP은 주로 상품무역 자유화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서비스·투자자유화와 규범제정까지 고려하는 TPP와 그 활용도 면에서 차이가 난다. 더구나 RCEP을 배후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일본이 최근 TPP 참여로 선회하면서 RCEP의 추진 동력은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머뭇거리다 만시지탄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경희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kh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