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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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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6ㆍ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패배로 끝났다. 전국을 푸른색으로 물들일 것으로 예상했던 터라 한나라당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실망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 서울과 경기지역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후보가 당선되어 이들이 끌고 갈 교육정책에 자녀 키우는 부모로서 걱정이 앞선다. 언젠가는 경쟁사회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자녀들에게 평준화의 가치를 강조하고 경쟁의 의미를 왜곡한다면 제 자식이 어떻게 매사에 도전적이고 실패에 굴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갖춘 젊은이로 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선거는 끝났다. 이 사회는 어쨌든 평등과 균형을 보다 큰 선(善)으로 받아들이는 엄연한 세력이 존재함을 이번 선거는 보여주었다. 감성의 깊은 곳에 호소하는 그들의 언변과 이글거리는 눈매 그리고 열정어린 몸짓은 언제든지 틈만 있으면 우리 사회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휩쓸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과시하였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인기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가 더 이상 방영되지 않도록 그 코너의 폐지를 요구한 적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비록 무모하면서 유치한 요구이지만 그것은 그 유행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 더럽다는 것은 곧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이 더럽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은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1명, 1등하는 사람밖에 없고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경쟁은 고통만을 안겨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경쟁은 이 사회를 정말 비인간적인 고통의 각축장으로 내모는가? 1등만을 기억하는 것이 진정 더러운 세상을 만드는가?


우리 사회는 참으로 역동적이다. 해방 직후 1947년 우리나라 취업자의 80%는 농사를 짓거나 벌목 또는 어업에 종사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면 누구든지 농림어업의 힘든 일에 종사할 확률이 80%나 됨을 의미한다. 지금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필자가 그 당시에 젊은이로 살았다면 거의 농사꾼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힘으로는 경쟁력이 전혀 없는 필자는 참으로 힘든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2008년 취업자 중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비중은 7.2%에 불과하다. 그 많은 나머지 사람들은 60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도 1인당 GNP가 해방 직후에 비해 20배 넘으면서 말이다.


농업과 가내수공업 위주였던 해방 직후 직업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직업의 종류는 대략 15,000개나 되며 각 직업 내에서도 생산되는 다양한 품목들을 생각한다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엇이 이토록 다양한 직업을 만들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는가? 그것은 현재보다 그리고 남보다 좀 더 잘 살기를 원하는 우리의 본성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행위의 공리로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남보다 잘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해서 우위에 서든지 아니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남보다 앞서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 보다 인간적인가? 전자에는 1등이 언제나 한 명만 존재하지만, 후자에는 길을 개척하는 것에 따라 1등이 새롭게 생겨난다. 1등이 한 명만 존재하고 그 1등만 기억한다면, 그 세상은 정말 더러운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1등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다름을 찾아내고 이를 개발하면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누구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지 않아도 1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길을 가는데 두려움과 불안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 길은 의외로 평탄할 수도 있겠지만 거칠고 질퍽하며 낭떠러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기업가의 정신이고 성공적인 기업가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직업의 종류와 각 직종의 곁가지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움에 도전하여 그곳에서 1등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등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누구든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더 높이고 풍요로운 삶의 영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1등이 될 수 있는 세상은 자유와 경쟁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다. 자유로운 경쟁이야말로 남과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세상을 열어 펼칠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획일화를 강요하는 평준화 사회를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준화로 살 수 있다면 그런 사회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경쟁사회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 모두는 겉으로 멋지게 보이는 경쟁사회의 동일한 목표를 향해 평준화 속에서도 은밀하게 질주할 것이다. 경쟁을 통해 걸러지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탐색하고 그래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늦추어진다. 그래서 평준화 그 자체에는 1등이 없지만, 평준화의 끝에는 오직 1명만이 1등할뿐이다. 이처럼 한 길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평준화야말로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가? 그 사회에서의 낙오자들은 남과 다른 자신을 개발하고 그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평준화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경쟁사회가 자신을 낙오하게 만든 것인 양 경쟁사회에 그 책임을 돌린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낙오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는 개그맨의 익살스러움에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1등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1등이 될 수 있는 사회는 경쟁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경쟁질서가 가져오는 사회적 효과는 누구든지 1등이 될 수 있고 1등의 개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1등만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1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야말로 풍요와 창의, 그리고 혁신이 가득 찬 역동적인 사회를 만든다. 그것이 보다 인간적인 사회이다. 그래야만 나도 1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진영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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