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불볕더위가 한풀 꺾일 즈음이면 다음 해의 조세정책 변화를 알리는 세제개편안이 발표된다. 올해도 지난 8월 23일 내년도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세제개편안은 주로 대내외 경제여건을 토대로 지향하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정책들이 제시된다. 세제개편안이 지향한 정책목표는 ‘일자리 창출’, ‘서민생활 안정’, ‘지속성장 지원’, 그리고 ‘재정건전성의 제고’ 등 네 가지이지만 아무래도 정책의 방점은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안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는 일자리 창출, 즉 ‘고용친화적 세제개편’이라는 목표가 전면배치된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세제개편안의 핵심이 ‘친서민'이었다면 올해 개편안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인 것이다. 이는 고용문제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경제ㆍ사회적 문제, 즉 청년실업,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제공을 통한 복지증진 등의 사회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제개편에서 고용친화적 세제를 구현하기 위해 제안된 대표적 정책은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제도이다. 이는 기존의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와 같이 투자금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하면서, 그 공제한도를 고용 증가 인원에 연동하도록 하여 신규 고용에 비례해서 투자세액공제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즉 고용 증가를 많이 하는 기업이 더 많은 세금혜택을 받도록 신설된 제도이다. 대신 그 동안 유지되어 왔던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는 내년부터 폐지(정확히 일몰종료)된다.
세제개편의 또 다른 목표인 ‘재정건전성 강화’는 현재의 재정적자의 규모나 증가속도를 고려할 때 정부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목표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번에 추가된 새로운 정책들, 즉 성형수술 및 수의사의 진료용역 등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방안이나 경마ㆍ경륜 등 사행성을 띤 입장장소에 대한 개별소비세 과세방안들은 과세의 당위성이나 조세 논리에 어긋남이 없는 합리적인 정책들로 평가된다. 반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또 다른 정책들, 즉 비과세 감면제도의 정비방안들은 그 내용 면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감이 있다. 실제로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조세상의 혜택들은 50여 개인데 이 가운데 1/3가량인 16개만이 폐지되고 31개가 존치될 것으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비과세 감면제도 폐지에 대해 정부가 표명해 왔던 강력한 정책의지와는 상반되는 결과로 향후 조세체계 개편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제개편안도 각 정책목표의 범주에 걸쳐 수십 개의 세부정책들을 담고 있다. 개편되는 정책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일견 우리나라 조세정책이 보다 구체화되고 정책품질이 높아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조세정책으로 너무 많은 것을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본디 경제정책이란 다양한 효과들을 발생시키지만 특정 정책목표 달성에 더욱 적합한 정책수단이 존재하는 법이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자율을 상향조정하는 것처럼 뚜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의 조합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조세정책이 그 본연의 기능과는 다소 동떨어진 정책목표까지 지향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정책의 실효성 약화는 물론이고, 제도의 복잡성 가중과 정책 신뢰도 저하와 같은 심각한 문제도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에 발표된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방안은 고용증가인원 한 명당 얼마씩의 세액을 공제해 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고용 증가에 획기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고용여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경기변화, 보다 현실적으로는 노동조합의 활동과 같은 고용관행 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정책이 추진되는 경우 고용추가의 한계 기업들(즉 고용을 증가시킬지 말지를 고민 중인 기업)의 경우에는 얼마간의 고용증가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이 변화되지 않은 채 단지 세금을 감면해 준다고 해서 계획에도 없는 고용을 증가시키는 기업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세제지원이 고용 증가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친서민이라는 정책목표 역시 조세정책이 지향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세정책이 친서민적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라도 현실적인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저소득 일용근로자의 원천징수세율 인하방안은 기본적으로 서민 세부담의 경감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세의 속성상, 세부담 경감방안은 서민친화적이기 어렵다. 저소득층은 이미 소득세를 전혀 내고 있지 않거나 낸다 하더라도 적은 금액만 내고 있기 때문에 세부담을 완화한다고 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세 부담이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친서민 기조가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천명한 조세정책의 근간, 즉 감세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조세정책이 특정대상과 ‘친하다’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안 친한’(또는 ‘덜 친한’) 대상도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고려가 이입되는 경우에는 덜 친한 대상에 대한 혜택을 줄여서 친한 대상에 대한 혜택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조세제도의 왜곡과 같은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세제개편에 있어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친서민의 강조는 그 본질상 자칫 대중영합주의(popularism)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만약 조세정책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조세정책의 왜곡 심화의 문제는 물론, 조세정책의 근간까지 훼손될 수 있다.
조세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정부가 필요로 하는 재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일자리 창출이나 친서민 등의 목표가 조세정책에도 강조되는 근래의 추세는 과도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물론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침체의 그늘이 더욱 짙은 계층에 대해 조세정책도 관심을 기울이고 조력해 준다는 측면에서의 의미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세정책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빈번히 바뀌어서는 안 되는, 국가운영의 기본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세정책이 올바로 선다면 고용 증가나 민생안정과 같은 정책목표 역시 보다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iamskkim@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