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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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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집권 그 첫 일 년 - 쏠림을 넘어 상생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아우르는 시대정신은 ‘변화’였다.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사법개혁 등 한국사회 전방위에 걸친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쓰나미가 거세게 몰아쳤던 한 해였다.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 모두 변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들은 왜 변화를 갈망하는가? 현실이 불만이고,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내내 스펙쌓기에 동분서주해야 하고 백통이 넘는 이력서를 써야 하는 현실은 불안하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은 힘없는 서민을 보호하기보다 힘센 권력 편이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이 판을 치는 현실에 불만이다. 왜 이럴까. 분명 이 세대는 앞선 세대보다 더 풍요롭고, 더 많이 교육받고, 남녀 구별 없이 내 꿈을 펼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인데 말이다. 세계역사에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구가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해 낸 멋진 대한민국인데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국민들의 변화요구에 보수정당의 후보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거듭하면서 승리를 쟁취했다. 경제생태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경제민주화를 진보정당 보다 먼저 들고 나왔다. 국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는 복지확대 공약을, 사회갈등의 치유책으로는 국민대통합과 대탕평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당선인이 보여왔던 말의 무게와 진정성을 볼 때, 그 공약들은 실천을 염두에 두고 고심한 것들이리라. 박근혜 당선인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말은 허언과 식언을 정치인의 언어로 동일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강한 울림을 갖는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은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고심해야 할 것은 모든 공약을 다 지켰는데도 자신이 내건 큰 목표인 중산층 복원과 수출, 내수를 양축으로 하는 쌍끌이 경제로 한국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경우다. 개별 공약의 실천에 골몰하였는데도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개개의 공약이 서로 충돌하거나 더 큰 원칙과 충돌한다면 이는 조정되는 것이 옳다. 표를 의식한 무리한 공약을 신속하게 걸러내고 현실에 녹아들어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더 큰 비전에 일치되게 적극적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펴나가는 것은 박근혜 정부 성패의 관건이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서는 '강자=악, 약자=선' 프레임을 극복하고 내 몫 챙기기를 넘어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고심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


중산층의 복원과 내수기반 살리기는 한국경제의 최우선 과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초래된 양극화를 극복하고 한국사회가 건전성을 회복하려면 심각한 쏠림현상을 해소하여 경제참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행위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일탈과 탈법행위에 대해 준엄한 법치를 실천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취약한 내수기반을 확충하여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내고 고용과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강제만으로는 어렵다는 것 역시 지난 십여 년 세월의 교훈이다.

고단한 민생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내수기반이 획기적으로 살아나야 한다. 내수기반이 취약한 원인은 영세성, 생산성 취약, 정책 실패 세 가지 때문이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상당수가 도소매, 숙박, 요식업종에 몰려있고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이들 간의 차별성 없는 경쟁이 하우스푸어, 위킹푸어를 양산해 낸다. 이에 더해 불합리한 세제, 행정편의주의적 규제, 창업훈련 부족 등의 정책실패는 서비스산업 빅뱅을 저해하고 내수위축을 가져오는 악순환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경제적 약자’ = ‘착한사람’ = ‘피해자’ 등식으로 일관하는 경제민주화 프레임은 새로운 기로에 선 한국경제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이제부터 가야 하는 길은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다. 3%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이 일상화된 사회, 투자는 있지만 일자리는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역동성을 상실해가는 사회가 우리 앞에 놓인 미래상이다. 경제적 몸집을 키우는 동안 사회적 자산(Social Capital) 축적을 등한시하면서 빚어진 사회구성원 간 신뢰부족, 51 대 48이라는 선거결과가 보여주는 이념 대립과 세대 간 갈등은 한국사회의 지진대이다. 정부의 요란한 구호나 강압만으로 일자리가 만들어 지고 지켜질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유토피아일 뿐, 여전히 우리는 성장에 목마르다. 지금 성장을 이야기하면 마치 1970년대 개발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시대착오자로 매도되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성장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잠재성장률을 1% 포인트라도 올려야 일자리가 더 만들어지고 더 많은 복지혜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자리가 부족하고, 골목상권을 채우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삶이 팍팍하다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제대로 된 상생, 분열을 치유하는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 모두가 지금의 위치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은 사회적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여 협력기업들과 과실을 더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소상공인들은 보호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높이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면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호만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어야 상생으로의 길이 열린다. 바야흐로 사회적인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 첫 일 년은 임기 5년의 명운을 결정하는 진실의 순간이다. 집권 내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려내어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야 말로 지지가 식기 전인 집권 초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과거 많은 정권이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여 첫 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어설픈 정권인수, 조각 실패는 정권의 핵심정책 좌초로 이어졌다.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집권 첫 해에 달렸다. 성공한 정부의 행복한 국민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 2013년의 출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byc@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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