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의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회장 선임을 사외이사제도 개선 이후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회장 선임절차를 강행했다. 금융당국은 KB에 사전검사를 통해 압박했으며 결국 회장 내정자가 사퇴했다. 이러한 KB 회장 선임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관치금융’이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당국의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개입 문제 있어
금융당국은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전횡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은 회장 선출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외이사도 스스로 선출한다. 사외이사의 보수를 결정하는 평가보상위원회도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어 연봉도 스스로 결정한다.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이 받는 돈은 연 1억 원이 넘는 업계 최고수준이다. 각종 이권 개입 의혹까지도 제기되면서 사외이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외이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문제가 있다. 첫째, KB금융이 공기업이 아닌 민간 기업이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소유주가 민간이며 외국인 지분이 약 58%에 달하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따라서 KB금융지주회사 회장 선임은 주주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회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다. KB금융 이사회는 관계 법령과 정관, 내규 등 정당한 절차에 따라 회장을 선발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상 하자가 없는데도 여기에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관치금융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둘째, KB금융의 투자손실에 대해 금융당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그렇다. KB금융의 경영진이 카자흐스탄센터 크래딧뱅크나 커버드본드(covered bond), 그리고 영화에 투자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한다. 이 투자 또한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금융당국이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투자라는 것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투자손실에 대한 경영상 책임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만약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금융당국은 법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사외이사제도 개선안, 핵심 문제 해결에는 미지수
사실 사외이사제도는 외환위기 직후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사외이사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전횡을 저지르거나 거수기 노릇을 하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 사외이사 임기 제한, 사외이사에 대한 상호평가와 다면평가 도입 등 사외이사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바뀐 제도가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외이사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사외이사는 회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회의내용에 대해 꼼꼼히 살펴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이미 본업으로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회사의 제반 사항에 대해 시간을 투자해 꼼꼼히 살피고 적극적으로 의사표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는 또 다른 도덕적 해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사외이사들은 평상시에는 회사의 문제에 대해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으며, 회사의 경영진 사망이나 경영상 위기 시에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이 외에도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사외이사제도는 경영권 시장의 감시기능을 약화시킨다. 기업 사냥꾼들은 실적이 낮은 회사를 인수해 경영진을 교체하려고 하는데 1/2 이상이 사외이사이기 때문에 경영진을 쉽게 교체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은 기업사냥꾼들의 감시 대상에서 제외되기 쉬우며 경영권 시장의 감시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사외이사들은 회사의 이익증진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 사내이사들은 회사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외이사들은 대외적 평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윤극대화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같은 공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외이사들은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고위험 고수익사업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장기적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은행의 주인을 찾아줘야
어쨌든 사외이사제도 자체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문제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KB 사태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KB 사태의 본질은 사실상 주인이 없다는 데에 있다. 현행법은 금산분리를 이유로 주식소유한도와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이렇듯 규제를 하다 보니 지배주주가 되려는 인센티브도 적고 또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 더구나 주식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분산되어 있다 보니 대다수의 소액주주들은 회사 경영에 무관심하다. 실제로 KB금융은 주주의 대리인인 전문경영인이 주인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주인-대리인 문제로 인해 KB금융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번 사외이사제도 개선안은 문제핵심은 해결하지 못한 체 규제만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주인노릇 하는 경향이 강하다. KB금융 사태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KB금융에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식소유한도 제한과 의결권 제한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사실상 주인인 주주들이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것인지, 지배주주 체제로 갈 것인지는 주주들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나아가 이사회 구성원의 1/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 의무규정을 폐지하고 이사 선임 여부는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박양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팀장, pyk@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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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양균,『사외이사 독립성 확보한다고 바뀔까?』, CFE Opinion Leaders Digest No.358, 2007. 6. 7.
박양균,『사외이사제 의무화는 재고되어야』, CFE Opinion Leaders Digest No.66, 1999. 9. 3.
Myles L. Mace, Directors: myth and realit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1986.
Mark Wolfson, Modern Corporation, The Free Pres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