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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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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 칼럼

[국민통합 칼럼 시리즈 13] 성공적인 사회통합의 과제

13. 4. 9.

최창규

사회통합이란 화두는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어느덧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그런데 이 단어는 우리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집행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얼핏 보기에 사회통합이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아마 북한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론 분열도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선거결과가 예외없이 100%의 참가율과 지지율을 자랑하는 정말 완벽히 통합되어 있는 나라로 비치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분열도 없고 갈등도 없이 잘 통합되어 있는 나라인 것 같다.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런 모습의 사회통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우리나라에서 최근 사회통합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는 정책들 가운데에는 필요한 것들도 있으나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여러모로 극복해야할 노사갈등, 양극화 등의 이슈가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통하여 저소득층의 복지를 향상시켜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틀 속에서 이러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순히 통합을 위한 통합은 곤란하다.  다시 말하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국가재정의 지속성 혹은 건전성이라는 대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미래 후손들의 살림살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비양심적인 정책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국민들 간에 증오, 분열, 대립을 부추길 목적으로 제시되는 정책의 경우 대부분 그 결과가 중장기적으로는 전체 공동체에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즉 분위기에 휩쓸려 앞서나가는 자를 질시하고 발목을 잡는 것이 뒤처진 자를 도우는 방식이라는 논리는 잠시 화풀이가 될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 해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가는 사람이나 그룹의 긍정적인 성과는 제대로 평가하되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경쟁에 뒤처진 자는 더욱 잘되도록 해주는 공생만이 우리나라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균등한 기회와 함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과정이 공정하면 그 결과에 대해 국민들은 수긍하게 된다. 그렇지만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그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더 이상 절대빈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빈곤감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곤 한다. 경제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일지라도 목숨을 걸고 가족과 고향을 등지면서 북한을 벗어나 빈손으로 혹은 빚을 안고 남한으로 탈출해온 새터민보다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회통합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우리 사회 상류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 전쟁 등에서 대통령이나 장군들의 자녀가 전선에서 싸우다 죽은 많은 이야기를 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도층의 병역면제 비리 뉴스가 지면을 더 많이 장식하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깝게 들린다. 이외에도 정치인, 고위관료, 부유층 혹은 사회지도층들의 권력형 비리나 도덕불감증 뉴스들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그리하여 소외된 사람들의 불만을 키우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사회통합을 진정으로 가로막는 것들이 된다. 심지어는 연쇄살인범들도 잡힌 후에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자기를 이렇게 만든 것은 자기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되어 그렇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기에 이르렀다.



부패는 본질적으로 정치인이나 관료 등이 권력을 이용하여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영향력을 미칠 때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보다도 중앙권력의 힘이 더 센 경우에 부패가 싹트게 마련이다.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통합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나 정치가 기업활동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하는 관주도 경제하에서 부패가 싹트기가 쉽다. 최근에 우리가 겪은 저축은행 비리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한 때는 정부가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나 1970년대의 대한민국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경제적 환경이나 배경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한국전쟁 후 민간의 자본축적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민간부문은 너무나 취약했다. 정부가 성장의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나 관료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세계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정부보다도 더 높은 국제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과거 후진국이었던 시절의 역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부가 민간을 지도 통제하기보다는 민간기업의 활력을 살려주고 밀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과거와 같이 성장을 주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



이는 작금의 창조경제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선진국기술의 모방에 의해 성장하는 단계를 넘어섰으며 창조없이 선진국경제 진입은 어려워질 것이다. 창조는 자유라는 바탕위에 싹튼다. 만약 정부가 창조의 주체가 되면 그 순간 창조는 어려워진다. 어디까지나 창조의 주체는 민간부문 즉 학자, 개인, 혹은 개별기업 등이 주체가 되고 아이디어의 생성, 평가, 보상과 사업자금조달도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여야 한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너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평가하고 자원배분에까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면 창조가 힘들뿐 아니라 자원배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패가 싹틀 수도 있다.



최근 우리경제는 점차 성장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잘 이끌어왔던 성장엔진이 아주 멈추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당하게 평가받아야할 기업이나 기업인들의 긍정적인 성과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위기가 정작 정부의 금리정책, 부동산정책, 금융감독정책, 금융정책 등 정부실패에 주로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시장실패로 몰아붙이면서 필요이상으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사회통합을 그저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견해를 물리적으로 섞어서 중간에서 비슷하게 나누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특히 우리는 지금 자유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내부와 외부의 세력들의 위협하에 놓여 있다. 자유를 없애려는 자유까지도 무제한 포용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이들은 자유가 전혀 없는 북한에 가서 자유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유가 충만한 대한민국 안에서 자유주의를 그릇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다. 인권이 잘 보장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적과 내통하여 자기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해치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공동체 차원에서 가장 엄중한 처벌을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경우에도 사회통합의 지향점은 바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복지가 갖추어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만 한다.



최창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ckchoi@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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