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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 칼럼

[국민통합 칼럼 시리즈 15] 진정한 사회통합은 자생적 질서

1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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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홍

국민대통합은 새 정부가 내세우는 주요 정책목표이다. 용어상으로는 사회통합 또는 응집(social cohesion)이, 대상과 목표가 모호하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다 적절한 개념일 것 같다. 어쨌든 통합론은 일반대중이 좋게 생각하고, 정치인들은 쓸모있는 득표전략으로 여기는 반면에, 사려 깊은 사람들은 허점이 많고 위험스럽기도 하다고 본다.



통합론에 대한 호감의 부분적인 이유는 경쟁과 갈등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쟁과 갈등이 관용, 양보, 소통, 협조, 나눔과 같은 미덕과 배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의 성취의욕을 실현시켜 사회화합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려 한다. 통합을 선호하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계층 간 갈등의 원인을 불평등에 있다고 보고, 정부가 나서서 이를 시정해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성적, 종교적 차별과 같은 불평등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재분배정책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커져가고 있음은 심각한 문제다. 자칫 집단이기주의의 증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위축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은 이런 대중적 편견과 불만을 근거로 예외없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렇지만 어느 정권도 국민통합을 잘 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까이 보면, 지난 정권들에서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정사회, 친서민 정책, 동반성장 정책과 같이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열심히 사회통합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좋은 점수를 못 받았다. 왜 그런가? 통합에 대한 인식의 오류와 통합정책의 한계 때문이다.



먼저 통합이 선이라는 인식, 또는 통합지상주의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자. 통합이 상정하는 미덕은 개인선택의 공간에서만 존재하고, 계층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다. 정치적 결단이나 제도에 의해 강요될 경우, 미덕은 복종과 의무로 대체되고, 그것을 계층 간 화합으로 볼 수는 없다. 미덕과 화합은 자유와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가치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그것이 전제로 하는 경쟁과 갈등은 개인적 성취나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사용되고, 분열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협조와 화합을 가져다주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논증해왔고, 경험적으로도 입증되었다. 획일적 통합에 집착하는 전체주의 체제는 자유와 인권의 억압으로 일관하다가 붕괴되었고,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경제파탄을 면치 못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갈등을 초래하였다. 지난 세기 중 인류에 큰 재앙을 불러온 후에 몰락한 전체주의 국가들의 행적이나, 현재 남부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회혼란상을 상기해 보라.



정부정책으로써의 사회통합정책의 한계



정부정책으로써의 사회통합정책은 어떤 한계를 가지는가? 사회통합론에는 정치적, 경제적 함정이 내재한다. 정치적 함정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체제를 동경하게 만드는 경향이다. 극단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오늘 날 우리사회에는 헌법으로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정치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지난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국민화합의 명분으로 종북세력, 급진좌파세력으로 비호해준 덕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은 대부분이 그들의 분열적 책동과 선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자유와 번영, 사회화합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체제수호를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체제수호의 의지는 정치적 결단이나 정부의 강제력으로 만으로 얻어지기는 어렵다. 사상과 이념, 역사에 대한 교육과 지식보급, 경험의 전달로 국민 개개인의 의식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만 가능하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이런 노력을 등한시했기에 전교조와 좌경 시민단체들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역사관과 이념성향을 심어 놓았다. 지금부터라도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



사회통합정책의 경제적 함정은 재분배정책의 위험이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재분배정책은 경제적 자유의 상실과 경제 후퇴로 이어져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혼란을 불러오고, 기대했던 평등도 이루지 못한다. 밀턴 프리드만의 경구대로 ‘평등을 앞세우면 자유와 평등을 모두 잃는 상황에 이른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므로, 자세한 설명을 피하고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재분배정책은 세금으로 취약계층(부문)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므로, 자원을 생산성(효율)이 높은 부문에서 낮은 부문으로 이동시키고, 이윤동기와 근로의욕을 감퇴시킨다. 따라서 생산은 줄고, 물가가 상승의 압력이 커지는 반면에 보조금 인상, 제몫 챙기기 경쟁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재분배정책과 연관된 (비생산적)관료조직과 전문가집단의 증대로 경제의 고정비 부담이 가중되고, 부패의 기회가 커진다. 결국 재정위기와 지급불능 사태에 이르고, 수혜계층의 반발과 저항, 계층 간 갈등과 사회혼란이 심화된다.



사회통합의 진정한 의미와 한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



그렇다면 사회통합의 염원은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목표설정과 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백퍼센트 국민통합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으며, 사회통합이라는 표현도 애매모호하고 공허한 개념이다. 이상적 사회의 보다 정교한 모습은 개개인의 선택공간이 충분히 확대되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회, 동시에 화합이 극대화되는 사회일 것이다. 도덕철학자였던 아담스미스에게 전자는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필요조건인 사회정의인 반면에, 후자는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충분조건이다.



우리가 사회통합에서 바라는 사회의 공통분모는 화합의 크기가 큰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의 화합은 그 자체가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건강한 사회를 나타내는 개관적 지표의 하나로서 OECD가 발표하는 사회통합(또는 응집력)지수(SCI,  social cohesion index)를 들 수 있겠다. 이 지수는 국가별로 타인에 대한 신뢰(trust), 소수계층에 대한 관용성(tolerance),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confidence in social institution), (자선과 같은) 사회적 행위의 정도 (level of social behavior), 투표율(voting)의 5개 항목에 대한 점수를 지수화한 값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미국가나 영미계통의 국가의 지수는 높은 반면에, 전체주의체제를 가졌던 나라나 사회주의 전통이 깊은 나라의 지표는 낮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지수는 모든 항목에서OECD 평균치보다 훨씬 처져서, 우리 사회가 상대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을 확인해준다.   



이런 객관적 평가가 주는 함의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먼저 주목할 부분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의 지수가 대체로 높고, 경제적불평등의 항목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이들 항목이 모두 국가정책으로 단기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예외로 볼 수 있는 항목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인데, 그것은 부패나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 법치주의의 확립이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의 필수 요건임은 잘 검증된 사실이다.



SCI를  사회의 결속력(또는 응집력)이나 화합의 수준으로 해석하면, 자유민주주의체제가 결속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요건이며, 사회의 화합수준이 국가정책 보다는 전통과 학습을 통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들 지수항목이 모두 자발적인 협조정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시장질서와 마찬가지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화합수준이 높은 사회, 진정한 사회통합에 가까운 사회는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 자생적 질서가 형성되는 사회이다. 자유민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은 그런 사회의 필수요건인 반면, 시장질서를 포함하는 자생적 질서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결속력을 높여줄 것이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사회통합에 보이는 열정이나 정치적인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사회통합의 진정한 의미와 한계에 대해 보다 깊이 성찰하고, 성급한 정책추진을 자제해주기를 기대한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dtjaa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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