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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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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국제정세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한반도 정세 전망

1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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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5월 20일부터 1주일 동안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다. 국가원수들이 외국을 방문하는 일반적인 사례와 비교할 때 괴이하기 그지없는 여행이었다. 우선 야밤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은 것, 해외출장 중인 국가원수가 정상적인 숙소가 아닌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최대한 드러내 보였다. 중국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중국을 방문해서 얻은 것, 합의를 이룬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 김정일이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는 거의 대부분이 “…할 듯하다”는 식의 추정, 추측기사였다. 처음에는 중국을 방문한 사람이 김정일인지, 그의 3남 김정은인지에 대해서도 혼선이 있을 정도였다.


김정일은 기차를 타고 거의 6,000㎞나 되는 거리를 7일에 걸쳐 여행했지만 김정일이 만난 중국 측 고위급 인사인 전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 26일 베이징에서의 회합 시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 등을 만난 시간은 불과 몇 시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경제원조와 군사무기를 지원받기 위한 방문


김정일의 중국 방문 목적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경제원조를 얻기 위한 것이었고, 그 다음 목적은 중국으로부터 군사무기를 지원받으려는 것이었다고 사료된다. 중국과 북한과의 ‘경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흔히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엄밀한 의미의 경협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과 경제교류를 할 때도 ‘경협’이라는 말을 사용했었지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소규모 경제체제와 경제적 협력을 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냥 경제지원, 경제원조라는 말을 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22일 도쿄에서 열린 한ㆍ중ㆍ일 3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김정일을 초청한 이유를 “김정일에게 중국의 개혁ㆍ개방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목적이 좋은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김정일 정권이 중국처럼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ㆍ개방을 이룩한 사람은 마오쩌둥이 아니라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6번씩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덩샤오핑이었다. 중국이 체제 개혁을 하고서도 동유럽 국가들처럼 붕괴되지 않은 이유는 중국의 엄청난 규모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서서히 파급되었고 중국의 공산정권은 시간을 두고 변화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에게 중국식 개혁ㆍ개방을 권유했을 때 북한 지도자들의 반응은 “북한은 종심(縱深)이 짧다. 그래서 개혁ㆍ개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라는 독(毒)이 침투할 경우 그 독은 순식간에 북한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말이다. 개혁ㆍ개방을 단행할 경우 국가로서의 북한이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김정일이다. 김정일이야말로 북한의 그 누구보다도 서구적인 문물을 폭넓게 자주 접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개혁ㆍ개방만이 나라가 살 길임을 잘 알고 있고, 이미 6번이나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그가 개혁ㆍ개방을 준비하기 위해 중국을 더 방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 측은 북한에게 무상원조를 주는 대신 경제거래를 하자고 제안했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김정일 7차 방중의 공식적인 결과이다.


김정일이 중국 방문 시 요구했을 개연성이 가장 큰 것은 군사원조에 관한 일일 것이다. 특히 북한의 재래식 무기 체계1)가 낡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작년 11월 연평도 사격 이후, 대한민국이 응징 차원의 훈련을 단행했을 때 북한은 재차 공격을 위협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 F15K 전투기들이 북한의 해안포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장비를 장착한 채 비행 중이었고, 북한은 F15K 전투기를 상대할 능력을 갖춘 무기가 전혀 없었다. 북한의 잠수정은 비대칭 무기체계의 이점으로 대한민국 군함을 격침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해군력 역시 북한은 대한민국의 적수는 못 된다.


작년 한 해 동안 한반도에 전개되었던 상황은 한반도의 미래 전쟁이 재래식 무기들이 사용되는 국지전쟁(局地戰爭)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핵무기 외에는 대한민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북한은 중국에게 신형 무기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남 정책을 다시 대결 정책으로 변화시킬 듯


이번 중국 방문은 종합적으로 보아 실패한 방문이었다. 여기서부터 향후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와 통일ㆍ안보 문제에 관한 북한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중국 방문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북한은 대남 정책을 다시 대결 정책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년 11월 23일 연평도 포사격 이후 대한민국의 여론이 급격히 북한에 대해 적대적으로 바뀌자 북한은 대남 유화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해 대화와 평화를 강조했지만 우리는 북한이 우선 ‘천안함 사건’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남북한 관계는 답보하고 있지만 그 책임이 대한민국 측에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근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비전략적 작태가 나오고 있다. 작년 1년 동안 북한의 도발에 의해 50명의 국군과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은 천안함에 대해 사과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공들여 이루어 놓은 대남전략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과는 다른 종류의 대남 도발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직접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전쟁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느껴, 공포에 떨게 하는 도발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번 방중에서 보였듯이 중국은 북한의 못된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북 화해정책의 재개를 요구하는 근거로 제시했던 주장, 즉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점령할 것”이라는 우려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꾸준한 대북 제재는 북한이 중국에 구걸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북한의 선택은 간단하다. 북한을 진정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될 일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작년 북한이 죽인, 대한민국 국군과 국민 50명에 대해 사과의 말 한마디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요구가 그렇게 무리한 조건이라는 말인가.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c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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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래식 무기 체계란 고물 혹은 낡은 무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핵무기가 아닌 모든 무기들은 재래식 무기(con-

  2. ventional weapons)라고 지칭한다. 즉 최신예 전투기라도 핵과 관련이 없을 경우 재래식 무기의 범주에 포함

  3.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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