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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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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국제정세

미국 패권의 향방

1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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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8월 5일(현지시간), 국제적인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 조치했다. S&P는 미국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S&P가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AAA'에서 한 등급 아래로 내린 것은 1941년 S&P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행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고 S&P사는 ‘추가 강등도 있을 수 있다’며 미국 정부의 반발에 대응했다. 곧바로 온 세계가 야단이다. 완벽한 안전 자산처럼 여겨졌던 미국 국채 신용등급이 강등되었으니 미국의 국채에 투자했던 세계 각국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 국제정세 해설이 논하려는 주제는 미국의 경제, 금융 상황이 아니라 정치, 군사, 전략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패권 향방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를 논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신용등급 평가가 미칠 효과에 대한 한국 주요 언론들의 분석이 상당히 과장, 오도되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美 신용등급 강등을 미국패권의 몰락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


S&P가 국제 신용평가에 관한한 대단히 권위있는 회사임은 분명하지만, 역시 미국 회사 중 하나일 뿐이며 그 회사의 평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회사가 어느 나라의 신용등급을 강등 혹은 상승시켰다고 그 나라가 패망하거나 번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토요일(8월 6일) S&P사의 미국 신용등급 하락 발표를 전하는 우리나라의 월요일자(8월 8일) 조간신문들 헤드라인은 곧 미국이 망해 자빠질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달러제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이 보이는가하면 미국이 달러는 물론 군사력과 국가 브랜드마저 추락할 것이라는 의미의 ‘미 3대 패권, 성역이 무너졌다’라는 제목조차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언론 출판계에는 미국의 몰락에 관해서는 무엇인가 센세이셔널한 제목을 부쳐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있는 것 같다. 예로서 How the West was Lost(서양은 어떻게 졌는가)라는 책은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미국의 몰락을 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패권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 혹은 미국의 압도적 국력이 증명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재미없게 보도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예로서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를 지도하는 1위의 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조셉나이 교수의 1990년판 저서 Bound to Lead의 한국어 번역판은「21세기 미국파워」라는 무색무취의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일본 번역판이「불멸(不滅)의 대국(大國)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과 묘하게 대조된다.


미국의 군사력은 군사비 기준 세계전체 군사비의 절반에 이르며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군사력을 세계 제2위에 해당하는 국가 군사력의 10배 이상 막강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신문은 그렇게 보도하고 있지만, 미국이 연 7000억 달러 정도에 이르는 국방비를 향후 10년간 총 4,000억 달러 정도 줄인다는 사실을 미국 군사 패권의 몰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투입되는 미국의 전쟁 비용은 연 1200억 달러 정도 되는데 이것 때문에 미국이 휘청거린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라크-아프간 전비는 미국 GDP의 1%도 안되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방비는 현재 미국 GDP의 4%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비는 미국 GDP의 12% 정도였으니 한국전쟁이 미국경제에 준 부담은 이라크, 아프간 전쟁의 3배에 이른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국방비는 미국 GDP의 35%였었다.


미국의 패권이 몰락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미국이 막강했는데 지금은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 미국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제국이요 슈퍼 파워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대제국이었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1949년 중국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미국; 1950 -1953 한국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미국; 1957년 소련이 인류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당시, 그리고 1961년 소련인 유리 가가린이 인류역사 최초로 우주인이 되었을 때 황망해 하던 미국의 모습; 1962년 코앞의 쿠바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 1975년 월남에서 패배한 미국; 자국의 장교들이 도끼에 맞아 죽었는데도 겨우 미루나무 밑둥이를 자르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북한군에 의한 미군장교 2명 도끼 살인사건) 미국의 모습들을 기억하는가?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소불위의 패권국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1978년 소련의 군사력은 미국보다 막강했고 소련의 경제력(당시 GNP 기준)은 미국의 48%에 이르렀으며 국력종합평가(Ray S. Cline, World Power Trends and U.S Foreign Policy for the 1980’s, Westview Press, 1980년 간행)에서 소련은 458점, 미국은 304점으로 소련에 한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객관적인 GDP, 군사비 기준으로 미국은 막강한 패권적 지위 향유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차세대 세계 패권국이라며 일본을 따라 배우자고 외쳤던 것이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일본이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이라는 논리가 점차 그렇지 않을 것으로 판명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유럽연합이 미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지자 이제는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차세대 패권국이라는 주장이 대 유행이다.


2010년 현재 차세대 패권국이라는 중국의 GDP는 미국의 40.1%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제가 이미 하락의 길로 접어든 후인 1995년 일본의 명목 GDP는 미국의 71%에 이르는 것이었음을 상기해 보자.(미국 GDP 7조 4140억 불, 일본 GDP 5조 2640억 불, IMF World Economic Outlook 자료에 의함) 미국 인구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의 GDP가 미국의 71%에 도달했던 것이다. 현재 중국의 인구가 미국의 약 5배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중국의 GDP가 미국의 4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의 국방비는 2010년 현재 6,610억 4,900만 불로서 중국 국방비 703억 8,100만 불의 9.4배에 이른다.


2등보다 얼마나 차이가 나야 1위의 나라를 초강대국 혹은 패권국으로 부를 수 있을까? 물론 객관적인 기준은 아무데도 없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GDP와 군사비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미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막강한 패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우리가 더욱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또 있다. 미국이 몰락하면 중국이 1등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19세기적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지금 미국이 경제적 혹은 군사적으로 몰락한다면 미국보다 더 빨리 파탄 상황에 이를 나라가 중국을 비롯한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일 것이다. 미국이 망할 리도 없지만 망한다고 가정할 때 중국이 1위가 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우리의 대중국 수출액은 반토막 이상 절단 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세계는 19-20세기처럼 ‘너 죽고 나 살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오늘의 세상은 미국이 휘청거리면 다른 나라들이 먼저 쓰러질지도 모르는, 미국이 건설했고 미국이 결정적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상호 의존적 세계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을 비롯한 많은 식자들이 미국의 몰락이 중국의 부상으로 귀결되는 줄 알고 있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c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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