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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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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국제정세

통미봉남(通美封南)과 통중봉북(通中封北) 전략

1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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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0일 행한 통일정책 특강에서 이제 통미봉남의 시대는 가고 통중봉북의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수립된 이후 4년 동안 한반도에 나타난 분명한 외교적 성과 중 하나는 북한이 더 이상 통미봉남이라는 전략을 행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통미봉남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은 타당한 언급이다.


통미봉남 전략이라는 용어는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 용어의 심오한 전략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통미봉남이란 문자 그대로 미국을 통해서 한국을 봉하려 한다는 북한의 전략을 의미하지만 북한이 시도하는 통미봉남 전략은 그 의도가 훨씬 담대하고 내용도 정교한 것이다.


북한 정권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자신들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에게 자신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어야 할 온갖 이유를 대며 미국을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설득하는 논리 중에는 ‘북한이 통일한 후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며, 그 경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아주 좋을 것’ 이라는 현실주의와 지정학을 배경으로 하는 그럴듯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미국의 전략은 대단히 현실주의적이며 미국이야 말로 적과 동지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은 과거 일본을 핵무기로 폭격한 나라지만 현재 일본과 미국은 최고의 양호한 동맹국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중국과 경합했지만 본래 미중 관계는 우호적 관계였다. 미국은 소련을 몰락시킬 때 중국과 거의 준 동맹 수준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현실주의적 국제정치관과 미국이 향유하고 있는 지정학적 유리점은 미국을 필요에 따라 언제라도 적과 친구를 쉽게 바꿀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지난 9년여 동안 지지부진 끌어온 6자 회담 참석 국가 중에서 미국과 전쟁을 해보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 한 나라 뿐일 정도로 미국은 누구하고도 전쟁할 수 있고 누구와도 동맹이 될 수 있는 최고로 유연한 국제 전략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바로 미국의 이 같은 속성을 파고드는 것이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이다. 북한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최소한의 조건은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편일 것’ 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룩하기를 원한다고 알고 있지만, 미국은 ‘미국편인 국가가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기를 원한다’ 고 말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언급일 것이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북한이 통일을 이룩할 경우라도 통일한국은 확실한 친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게 확신시켜가는 작업이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한반도에 미국편인 통일국가가 들어서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통일된 한반도가 자신편일 것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될 경우 통일이 주역이 누구든 관계없다. 같은 논리로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을 이룩했는데 그것이 반미적인 성격의 국가가 된다면 미국은 그런 통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엄청난 반미 정권이 들어서 있는 경우,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미국이 보기에 ‘생각해 볼만한 발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반미적인 국가라면, 그리고 북한이 미국에게 자신이 통일되면 확실하게 친미 국가가 되겠다고 아부를 떤다면 미국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미국은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는 오늘날 자신에게 우호적일 가능성이 보다 높은 세력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미국은 현재 「한국=무조건적 친미 정권, 북한=무조건적인 반미 정권」 이란 등식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지난 시절의 한미 관계의 역사가 미국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미국은 통일 후 한반도가 반미국가가 된다면 결코 그 같은 통일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통일된 한반도가 친미적인 국가일 경우라면 누가 통일할 것이냐의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도 잇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에 대해 북한이 통일하면 확실한 친미 국가가 될 터이니 자신을 통일의 주역으로 삼아 달라는 황당한 꼼수를 쓰는 것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한국에 심각한 반미 정권이 들어설 경우 언제라도 다시 작동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주요 언론의 사설이 이명박 대통령의 ‘통중봉북’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같다고 경계를 표했듯이, 우리의 통중봉북 전략은 북한의 통미봉남과 같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한반도에 통일된 친미국가(그 나라가 어떤 정치 체제를 가질 것이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가 들어서기를 원하지만 중국은 한반도에 어떤 종류의 통일 국가가 들어서도 그 사실이 별로 달갑지 않은 나라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는 중국이 속이 좁아서가 아니라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바로 옆에 통일된 강한 나라가 형성되는 것 그 자체가 유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통일 한국의 주역이 누가 될 것이냐의 원대한 문제와 관계있는 일이지만 한국의 통중봉미 전략은 기껏해야 중국이 북한의 부랑자적 행동을 보다 강하게 규제함으로써 한반도를 보다 안정시키는 목표를 달성함이 고작일 것이다.


우리는 최근 북한 주민이 1년 이상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사올 수 있는 돈을 미사일 발사와 불꽃놀이로 탕진하고 있는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똑똑히 보았다. 이제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일인지 알게 되었다. 한반도의 안정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평화 통일을 이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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