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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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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국제정세

북한의 권력 투쟁

1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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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북한의 정치를 분석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묘사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정치에 관한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노출된 곳의 정치 분석도 쉽지 않은 일인데 모든 것이 비밀에 쌓여 있고, 분석자들이 직접 가서 관찰해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장난일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북한이 발표한 일들 중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북한 관찰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7월 15일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리영호 차수가 모든 직위에서 전격적으로 해임 당했다는 사실과 7월 17일 현영철이란 인물이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했다는 사실, 그리고 18일 약관 28세의 김정은이 북한 최고 계급인 공화국 원수가 되었다는 특별 성명발표 등이다.

북한의 본질을 호도하는 이율배반적 해설들은 지양해야


이와 같은 보도들이 있은 후 한국은 물론 러시아, 미국 등 관련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상황을 해설 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그 해설은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해설을 들으면 들을수록 북한에서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오히려 더욱 헷갈리게 된다.


대한민국 국군의 주요 지휘자들의 이름도 거의 알 것 같지 않은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북한의 군부의 세력 판도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북한군 장군들 이름을 대가며 누가 누구와 싸우다가 누가 무슨 이유로 밀려난 것이라는 등 권위있게(?) 해설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 놀랍기도 하다.


먼저 북한의 발표를 인용하고 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논해 보기로 하자. 북한 노동당은 7월 15일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국 회의를 열어 리영호 해임안을 처리했다고 발표 했다. 이틀 뒤인 17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은 현영철 대장이 차수로 승진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그 다음날인 7월 18일 특별 방송을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공화국 원수’라는 칭호를 수여했다고 발표했다.


리영호 차수의 이름 앞에 ‘실세(實勢)’라는 형용사를 부치고들 있는데 김정일 장례식날 운구 행렬 속에 리영호가 서있던 자리를 보았을 때 그를 실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영호가 진짜 실세라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단칼에 날라 가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현영철은 어떻게 대장에서 차수로 올라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 차수가 되었으니 ‘실세’가 된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북한 측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김정은은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노동당 총비서, 국방위원장에 이어 북한 최고통치자로서의 직함을 모두 승계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북한의 이제 진정한 실세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난 몇 달 동안은?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보고 김정은의 권력이 안정화 되었다, 리영호를 제거한 것은 경제 개혁을 위한 것이다, 당이 군을 지배하게 되었다, 김정은은 카리스마가 약해 시스템(당)으로 북한을 지배하려고 한다 등등 이율배반적인 설명들이 다수 제시 되었다. 이들 설명들을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설명들의 북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1인 지배 체제를 지탱해 준 것은 군부의 지지


북한은 구조적으로 일인이 지배하게 되어 있는 나라다. 김씨 왕조라고까지 지칭 되는 정치 집단에서는 왕에 해당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유일무이한 최고여야 한다. 일인 절대 권력이 있는 곳에서 당의 위상이 강해질 수 없다. 그러나 군은 예외다. 국민들에게 먹고 입고 자기위한 기본적인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는 체제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기반은 군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언제라도 폭력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의 원천은 군이다. 그래서 북한은 군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선군 체제가 되었고,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현역처럼 군복을 입기도 하는 군의 최고 사령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학의 불편한 진실중 하나는 ‘아무리 정권이 못났어도 군부의 지지를 받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북한이야말로 이 같은 진리를 이제까지 증명해 오고 있는 정치 체제다.


김정은이 개혁개방으로 가고 싶은데 리영호가 반대해서 그를 제거 했다는 터무니없는 분석은 필요 없다. 북한의 살길이 개혁 개방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나라로서의 북한이 사는 길’과 ‘북한의 현 정권이 사는 길’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혁 개방하는 날 북한 주민들과 북한이라는 체제는 살 수 있게 되겠지만 김정은 정권의 안전은 전혀 보장 받을 수 없다. 북한은 주민이 사는 것보다는 김정일-김정은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나라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이제껏 개방, 개혁이 아니라 고립 강압의 정책을 고집해 왔던 것이며 김정일, 김정은의 고립 강압 정책을 지탱해 주던 것이 북한의 군부였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도래하고 있다 : 한반도에 닥칠 위기와 기회

그런 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 총참모장 리영호가 해임 되었다니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문민통치에 반기를 든 군 지휘자가 (평화적으로) 해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리영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믿을 수 없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북한 기준으로 아직 나이가 젊은 리영호가 해임 당했을까? 리영호는 혹시 김정은의 권력을 넘본 것은 아닐까? 리영호를 몰아냈다는 현영철은 실세인가 꼭두각시인가? 그가 꼭두각시라면 북한의 군부는 기분이 유쾌할까? 그가 실세라면 리영호도 제압한 그가 앞으로 못 할일이 무엇일까? 북한이 전혀 민군관계(Civil Military Relations)에서 문민통치의 전통이 확립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같은 질문을 제기 하는 것이다.

김일성이 권력을 독차지 한 1950년대 후반 이후 거의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북한의 1인 지배체제가 도전받고 있는 권력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일부 논자들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김정은 정권이 안정 되는 것이 우리에게 좋다고 말하고 있고 작금의 사태를 김정은이 1인자의 지휘를 강화시킨 것 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중론은 김정은의 안정은 동북아의 불안정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에 돌발 사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정통성 위기의 질곡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리영호를 해임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는 첩보도 있다.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이 첩보는 다른 말로 한다면 ‘북한군이 자기들끼리 총질을 했다’라는 의미가 된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공산주의의 진리를 북한의 최근 사건에 대비 시킨다면, 북한에 권력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전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서방측 학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넓은 의미에서 ‘북한의 급변사태’ 라고 정의 내리고 있었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우리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잘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한반도는 분쟁 지대가 되고 말 것이며, 잘 대비한다면 평화통일의 길이 열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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