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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민영화의 퇴보는 경제개혁의 한 축을 포기하는 것이다

0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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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선

노무현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난 경제위기 이후 추진되어 온 철도, 전기, 가스 등 네트워크 공익산업의 민영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신문들은 대통령 경제보좌관인 조윤제씨의 인터뷰를 인용해서 철도의 민영화는 공사화로 대체하고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의 민영화는 보류하되 이미 기정사실화된 남동발전의 매각만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민영화 계획의 변경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민영화를 하지 않고 정부가 특정 산업 분야에서 공익성을 주장하면서 공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영삼 행정부 초기에도 민영화에 대한 반대 논리는 동 행정부가 그 계획을 시행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었다. 김대중 행정부에서 그나마 민영화가 진전된 것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효율성에 의한 외환위기의 극복이라는 목표에 인기영합적 이익집단들과 이들의 전위대들의 공격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시 경제위기가 지나간 듯 보이자 국수주의적, 개입주의적, 정부주도적, 인기영합적 논리들이 민영화 자체에 대해서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고 그러한 논리가 배경이 되어 민영화 정책의 후퇴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영화와 규제개혁은 시장을 확대하고 시장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한 최선의 정책수단으로 향후 경제적 도약을 원한다면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영화 정책의 퇴보는 경제개혁의 한 축을 포기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거창한 구호를 전제로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소위 서구 선진국가들을 휩쓸었던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은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해 온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의 정부에 의한 개입이 극도에 달하게 했던 이념적 중추였다. 그러나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열망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이 어떤 종말을 맞을 수 밖에 없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부르짖었던 뉴질랜드는 그 경제가 곤두박질쳐서 급기야 1980년대부터 심각한 경제적 구조개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영국, 미국 등을 포함한 선진국들도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의 과다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70년대 말 이후 민영화와 규제개혁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시장을 중심으로 하고 정부의 개입을 과감히 축소하는 길로 나섰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누진세제, 사회보장 등 자애로운(benevolent) 정부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는 서구에서는 적어도 지식인들을 포함한 상부 엘리트들이 공감하는 시대적 조류였고 이를 위한 체제를 건설하는 데 국민적인 동의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실험이 시작된 지 불과 30년도 못되어 증명되었다.

한편 1920년대 러시아는 혁명이 완결되고 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날 때까지 경이적인 성장을 지속했었다. 그 당시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모두 공황에 직면하기까지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결국 모든 나라가 사회주의를 채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눈부신 경제성장을 구가했고 1950년대에는 미국에 앞서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나타냈던 소위 사회주의 혁명도 결국 1990년대에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실상 붕괴하는 것으로 그 종말을 고했다. 오늘날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들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것으로는 쿠바, 북한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으며 이들 또한 사실상의 체제붕괴 상태에 놓여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종말과 복지국가들의 환골탈태는 정부주도적, 개입주의적 경제시스템이 경제적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유효한 제도가 되지 못함을 경험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다른 교훈은 그나마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쟁을 전제로 복지국가를 지향했던 나라들은 그 체제의 전환과정에서 비교적 어려움을 덜 겪은 반면,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나라들은 그 체제전환의 과정에서 지난 세기 최빈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겪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어야만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정부개입적, 평등지향적,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는 그것이 목표하고 있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따라서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민영화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전제하였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고, 규제개혁은 미국과 같이 민간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운영하면서 규제를 가하던 국가에서 최상의 체제전환 수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79년에 시작된 영국 대처 행정부의 민영화 프로그램과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개혁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 역할의 강화가 지향하는 바는 물론 경제적 효율성의 제고였다. 그리고 이러한 두 정책은 다양한 이익집단들과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확고하게 추진되어 20세기 후반 양국 경제의 부흥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영화를 재벌에게 공기업을 인수시켜 특혜를 주는 것이거나, 외국인들에게 알짜 공기업을 헐값에 매각하여 국부를 유출할 뿐만 아니라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의 장악을 가속화하여 경제활동을 위한 필수재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을 빚게 하는 잘못된 정책수단이라고 폄하하는 비판이 있다. 더구나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실업을 부추기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괴물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은 민영화할 경우 기득권을 상실하는 이익집단들에 의해서 민영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전파되고 선전되고 있다.

과연 민영화는 이런 성격을 가진 좋지 못한 정책수단인가? 우선, 민영화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시장을 확대하는 조치이다.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시장기구를 통한 자원배분이 다른 어느 방법보다도 효율적이라는 유사 이래의 경험에 따라 한 나라 경제의 효율성을 확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이다. 따라서 특정 공기업이 정부의 개입과 규제, 특혜와 의무부과를 떠나 민간기업이 되는 것 자체가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하는 최선의 길인 것이다. 민영화 이후 지배구조는 어떠해야 하고 소유는 누가하고 하는 내용들은 사실상 이러한 큰 틀을 가지고 논의를 할 때만 유효한 것이 될 것이다. 더구나 민영화를 진행할 경우 이들 대규모 공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재벌들에 국한될 것이고 이는 특혜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민영화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만 그렇다. 민영화 과정을 최적으로 관리해 나가고 또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제도들을 정상적으로 가동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서 보다 심각하게 고려할 것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통해서 대기업이 당해 기업을 장악하는 것과 정부가 공기업으로 그대로 유지하거나 민영화 이후의 지배구조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폐해가 클 것인가이다. 이미 완전한 민영화가 이루어진 포항제철, 한국통신 등의 지배권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과연 향후 이들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둘째, 민영화는 국부를 외국에 헐값으로 유출할 뿐만 아니라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의 장악을 가능하게 하여 필수재의 안정적 공급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타당하지 못한 생각이다. 헐값이라는 것은 상품의 시장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파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헐값매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해당 기업자산의 장부가치를 전제로 해서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시장가격은 장부가치가 얼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산이 앞으로 영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가에 대한 예상을 전제로 매매자간의 협상을 통해서 형성된다. 만일 해당 기업이 전혀 현재의 상태에서 향후 이익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그 장부가치가 무엇이든 간에 그 가격은 거의 공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 기업을 웃돈을 얹어 주고라도 구매자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헐값매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국민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매각과정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전제한다면 헐값매각 시비는 사실상 합리적 논리를 가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설사 민영화를 통해서 그 소유와 지배권이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에 의해 장악된다 할지라도 해당 기업은 항상 이윤극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 영업환경은 정부의 각종 법, 제도 및 규제에 의해서 제약되며 기업의 목표는 결국 시장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므로, 민영화 기업은 안정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보장하면서 공급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영화가 기간산업이 생산하는 필수재의 안정적인 공급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그 근거를 찾기 힘들다.

셋째, 민영화가 실업을 부추긴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민영화는 해당 산업에서의 다양한 신규 업종과 업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여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물론 민영화되는 공기업에서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것은 보편적이다. 그것은 노동자가 현재 적절하게 고용되어 있는데도 정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생산의 핵심요소인 노동의 과소사용을 통해서 생산효율성을 저하시키려고 하겠는가. 대개 공기업에서 인력조정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과잉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데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과거 발전 및 철도노조의 파업시 비노조 직원들만으로도 전력공급이나 철도의 운행에 큰 지장을 받지 않았다는 평가나 특정 방송사의 노조파업시 비노조 인력으로만 방송을 운영하여도 그 방송에 차질을 빚지 않을 수 있었다는 내용의 비평들은 결국 해당 기업들이 과잉고용 상태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업들에서 인력을 덜어내는 것을 실업을 부추긴다고 비판하는 논리가 타당한 것인가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구조개편은 전력공급 분야와 관련된 많은 새로운 일자리와 직종을 창출하였고 그 산업의 전반적인 종사자수는 오히려 민영화 이후에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넷째, 공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민영화로 인해서 상승하여 소비자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타당하지 못하다.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민영화를 실현한 나라들은 거의 모두 시장경쟁을 통해서 가격인하와 서비스 품질향상을 경험하고 있다. 오죽하면 OECD나 APEC 등 각종 국제 경제협력 기구들이 민영화와 규제개혁을 하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권고하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국제기구들이 선진국의 논리를 대변해서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권고를 한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제기한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으나 과연 그러한 시각이 정당성을 가질 만큼 민영화가 외국기업이나 외국인들에게만 큰 이익을 실현하도록 한 증거가 존재하는가. 특히 민영화가 사실상 보류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기, 가스, 수도, 철도 등 소위 네트워크 공익산업의 민영화와 경쟁도입을 통한 경제적 효율성 제고는 이들 공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모든 산업과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이므로 국가경쟁력의 제고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산업에서의 보다 저렴한 요금과 서비스 품질의 획기적인 개선은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인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인 민영화와 경쟁도입을 포기내지 퇴보시킨다는 것은 결국 경쟁력 제고를 위한 최선의 개혁방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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