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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금융부문의 건전성과 시장규율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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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외환위기 이후 금융부문의 건전성 확보는 정부의 경제안정화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참여정부도 경제운용의 기본방향 중의 하나로 금융부문의 건전성 제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어떻게 달성하는가이다. 금융부문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를 들라면 건전성 감독과 시장규율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철저한 건전성 감독을 통해 미리 문제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사후 금융부실이 가져올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시장규율의 확립을 통해서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금융기관은 시장에 의해 패널티를 받고, 또 이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시장원리에 의해 퇴출되는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감독과 시장규율이 유기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 금융부문의 건전성 확보는 어렵게 되고 소위 관치금융이라는 정부의 개입을 통한 문제해결이 시도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수의 금융부실은 철저한 건전성 감독의 부재로 인해 발생되었고 그 부실의 파장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시장원리에 의해 해결되기 보다는 비정상적인 정부의 개입으로 귀결되어 왔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사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회원모집으로 인한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이미 오래전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감독의 시기를 놓쳤다. 이미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지다 보니 정부로서는 시장원리에 의한 해결이 부담이 되어 각종 관치금융적인 조치를 내놓았다. 우선 카드사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명목 하에 지난 3월에는 카드사의 부대업무비율 제한의 준수시한을 연장하는 등 감독기준을 완화하였다. 지난 4월 3일에 발표된 카드채 관련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경우도 과거의 관치금융적 행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6월 말까지 도래하는 투신권보유 카드채의 절반을 은행과 보험사들이 떠맡고 나머지는 만기연장하는 등 시간벌기에 급급한 대책이 주 내용인데 이는 전형적인 “돌려막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은행이 떠안은 카드채는 카드사의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재매입할 것이라고 하는데 만약 카드사의 경영이 호전되지 않으면 그 부실을 은행권이 그대로 뒤집어쓰는 꼴이 되어버려 금융기관간의 연쇄부실을 정부가 조장한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시장참가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기업 및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이제는 가계부문에까지 도덕적 해이는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신용불량자 3백만명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가계신용 위기가 깊어짐에 따라 정부의 특별지원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져 빚을 갚기 위한 적극적 노력도 하지 않고 갚을 의사마저 없는 채무자의 수도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정부가 취해온 금융정책을 살펴볼 때 이러한 도덕적 해이의 확산은 가계의 합리적 선택일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서 동요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시장의 기능을 무시한 특별조치로 일관해 왔으니 신용불량자 입장에서는 특단의 정부조치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도 합리적 의사결정일 수가 있는 것이다.

시장규율이 정부에 의해 훼손되는 이러한 풍토에서 경제주체 전반으로의 도덕적 해이의 확산은 당연한 결과이다. 건전성 감독 미비는 부실의 소지를 키우고 결국 이는 시장불안으로 나타난다. 또 이때마다 내놓는 정부의 반시장적 응급처방들은 시장참가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잉태시키고 이것이 다시 미래의 시장불안 요인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개입한다는 식인데 우리가 언제 한 번 제대로 시장에 의한 문제해결을 시도한 적이나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만약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장의 자기치유 능력을 떨어뜨려온 정부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예방적 차원의 철저한 감독과 문제발생의 책임을 묻는 시장규율의 확립 없이는 이번 카드사와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며 지속적인 금융부문의 건전성 유지는 요원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아직 금융부문 개혁에 대한 평가는 이르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금융부문의 건전성 제고와 관련된 첫 단추는 아무래도 잘못 꿰어진 것 같다. 다시 한 번 시장원리에 충실한 금융정책을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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