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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공정위는 과연 심판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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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운동시합을 볼 때 짜증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심판이 지나치게 자주 휘슬을 불어 경기의 흐름을 자르는 경우이다. 심판의 역할은 경기를 잘 운영하는 것인데 어떨 때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선수들이 이성을 잃을 때 다소 엄격하게 경기를 운영해서라도 페어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심판이 특정 선수에 선입견을 갖거나 반칙을 예단하여 휘슬을 불어서 멋있는 플레이까지 막아버리게 되면 운동시합의 흥미가 반감된다.


우리나라 공정위가 이런 심판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정위는 재벌의 출자와 채무보증을 규제하며 지주회사의 설립요건과 운용도 일정한 방식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공정위의 이러한 재벌규제는 재벌의 피라미드식 지배로 인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염려’ 때문에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 예방하자는 것이다. 즉,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로 인한 가공자본의 형성,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장, 문어발식 기업경영 등을 막아보자는 것이 그 의도이다. 나아가서 한 재벌기업의 부실화로 그룹전체가 연쇄도산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자면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민한다.


그러나 채권자 및 다른 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 은행이나 증권거래소에서 감시하면 되고 금감위에서 관련법에 따라 규제하면 될 일이다. 예를 들어 가공자본이 형성되는 것은 은행에서 더 잘 아는 것이니 은행이 알아서 대출해 주지 않으면 된다. 기업의 부채조달과 출자의도를 예단하고 잘못될 경우만을 ‘우려’해서 아예 처음부터 이를 규제하고 금지한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반칙할 ‘우려’가 있으니 태권도 배운 사람은 축구시합 못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상대선수를 걷어차면 그 때가서 휘슬을 불어도 될 일이다. 문어발식 기업경영을 막아보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걱정하는 데 이는 시장에서 판단할 일이다. 두산이 주류에서 중공업으로 주 업종을 바꾸고 삼성이 전자산업에 뛰어든 것이라면 ‘문어발’은 건강한 사업다각화와 업종전환으로 보아야 한다. 잘되는 재벌은 놔두고 잘 안된 대우나 한보와 같은 경우만을 예로 드는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공정위는 특정한 형태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유도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들도 나름대로 반성하고 구조조정하며 주주와 소비자를 위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변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조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의 구조조정본부를 없애고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훈수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본부가 없어지면 다른 부서에서라도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공정위의 규제 하에서 지주회사로 변환하는 데에는 최대 5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게 된다. 기업조직이란 경영환경에 따라 기업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요,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수단이다. 심판은 휘슬만 잘 불면되지 공을 차는 방향까지 코치하면서 뛰어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채택하기 원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부채비율 100%와 자회사에 대한 30% 지분율 요건이라는 지주회사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의 재벌규제는 본래 광범위한 해외사례나 경제학적인 이론에 근거하여 입안된 것이 아니다. 80년대 말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여론을 의식하여 일본 공정거래법의 재벌규제를 본따서 만든 제도이다. 과학적인 경쟁정책에 의하여 입안된 제도도 아니다. 그나마 일본 공정거래법의 재벌규제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공정위는 경쟁정책을 집행하는 독립적 기구로서 공정한 심판역할을 해야 하는데 코치 역할에 관심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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