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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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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새로운 개혁의 출발점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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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지난 4월초 증권거래소는 2003년 12월 결산기준 상장기업실적을 발표하였다. 금융업의 경우 카드부실 등으로 인해 적자로 전환하였지만 제조업의 경우는 2002년에 비해 개선된 실적을 보였다.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6.56% 증가하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계속 되어져 온 재무구조 우량화로 부채비율은 99.27%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전년대비 9.89% 감소한 것이며 어느 선진국에 못지않은, 오히려 더 낮은 부채비율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조업의 실적 호전은 2000년 이후 계속 되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별로 없는 듯 하다. 계속되는 기업실적의 호전과 낙관적이지 않은 미래전망이 공존하는, 현재의 부자연스런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투자부진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작금의 투자부진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OECD 회원국 대부분이 1990년대 이후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으나 한국의 설비투자 비율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의 GDP 대비 설비투자비율은 12.3%, 일본은 12.6%이나 같은 기간 한국은 11.2%을 기록하였다. 특히 2000년 이후의 설비투자율은 더욱 저조하여 2003년에는 마이너스 4.6%로 추락하였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성장동력을 축적해야 할 마당에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셈이다. 각종 적립금 등 사내유보액의 증가로 상장기업들의 2003년 유보율은 전년 191%에서 325.4%로 급격히 증가하는 등 기업들은 이익이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보다는 현금쌓기에 급급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업 재무구조의 건전성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으로 귀결되었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기업들의 이와 같은 풍부한 유동성이 금융시스템 내로 유입되면서 가계의 잉여자금이 기업으로 유입되는 전통적인 금융중개기능이 무너지고 가계부문이 경제체계 내의 잉여자금을 소비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누적된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최근 가계대출 축소와 더불어 급증한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도 금융부실을 촉발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투자를 하지 않는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투자를 원하는 기업을 뒷받침할 만한 금융여건은 갖추어져 있는가. 현재 금융기관의 총 수신자금 중 단기 유동성 비중은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으며 2003년 11월말 현재 금융기관의 6개월 이하 단기수신은 383조원(잔액기준)에 달하여 이는 금융기관 총 수신에서 50%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금융기관 수신의 만기가 이렇게 단기화 되고 있으니 여신의 만기도 단기화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여건에서는 장기 투자자금조달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를 하지 않고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을 위한 금융시스템은 미비한 상황이다 보니 일자리 창출이 잘 될 까닭이 없다. 한 마디로 경제 각 부문의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간다고 볼 수 없는 시스템적인 문제를 우리는 현재 안고 있다.


이제 5월말부터 17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다. 이미 각 당에서는 투자활성화, 고용창출 등을 위한 정책제안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새로운 정책의 도입에 앞서 외환위기 이후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 각종 정책에 대한 차분한 평가가 우선 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업부문 및 금융부문에 취해진 여러 형태의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한국경제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취해졌던, 올바르다고 믿어왔던, 각종 개혁정책들 중 우리 경제시스템에 맞지 않는 것은 없는가, 특정정책을 도입할 만한 여건은 성숙되어 있었나,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는 정책은 없었나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고서 새로이 쏟아지는 정책들은 무의미하며 우리가 안고 있는 현안들을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새 국회를 시작하며 모두가 개혁을 외치지만 새로운 개혁의 출발점은 진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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