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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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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국사회의 경제지능지수, 이대로는 안된다

08. 4. 10.

1

황인학

1​. 들어가는 글


우리 사회의 경제지능지수(Economic Intelligent Quotient: EIQ)는 대단히 낮다. EIQ란 선택(의사결정)에 수반되는 기회비용, 시장의 작동원리와 사회적 기능, 기업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질서의 구성요소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점수로 지수화한 일종의 추상적 개념이다. EIQ는 흔히들 알고 있는 지능지수(Intelligent Quotient: IQ)나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 EQ)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미국의 제도학파 학자들 논문을 읽다가 우연히 이 용어를 접한 후 1997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간된 졸저,『경제력집중, 한국적 인식의 문제점』에서 소개한 후 간헐적으로 사용해 왔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낮은 경제지능지수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게다가 이와 비슷한 의미로 ‘반기업정서(反企業情緖)’라는 부정확한 용어가 횡행하며 문제의 실체를 호도하는 일들이 빈번하기에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사회의 경제지능지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앞으로 몇 차례 나누어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개인에서부터 정치권과 정부관료 등 사회지도층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지능지수는 전체적으로 열악한 수준에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주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고, 또 이는 모든 경제주체(개인, 기업, 정부)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위축시키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환기시키고자 하는데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기풍이 만연해 있고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부정하고 정부에 대해 결과적 형평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날로 높아가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병(病)’에 걸려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한국병(韓國病)’이고,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있음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기의 표현방식과는 다르지만 ‘한국병’의 개별적인 증상을 이야기 하고 이를 방치할 경우 미구에 닥칠 위험성을 경고하며 정부와 정치권의 주의환기를 촉구하는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의 접근방식은 시스템적인 원인분석과 처방이 아닌 개별적 사례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각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방해하는 특정 정책이 형성되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의 무지, 또는 의지 부족의 소산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으로 낮은 경제지능지수 문제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의 결론은 자명하다. 한국병을 치유하려면 EIQ의 혁신적인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EIQ의 혁신적인 개선이 없이는 우리 사회가 한국병에 좌초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2. Low EIQ의 실태


<반기업정서의 실태와 문제>


먼저, ‘경제지능지수(EIQ)’는 ‘반기업정서’와는 어떻게 다른가? EIQ는 개인의 선택과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도를 말한다. 최근에는 EIQ와 비슷한 의미로 ‘반기업정서’라는 용어가 언론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반기업정서는 기업에 대한 好ㆍ不好에 대한 감성적 판단을 지칭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장의 자원배분기능과 경쟁의 창조적 파괴기능, 그리고 기업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든 정서상으로는 대기업 또는 재벌을 곱지 않게 볼 수도 있기 때문에 EIQ는 반기업정서와 구분되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기업의 본질이나 시장경제질서의 작동원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오해는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교정될 수도 있지만 감성영역에서의 好ㆍ不好 판정은 논리와는 다른 영역에 속한 문제이다. 따라서 낮은 EIQ의 문제를 반기업정서라는 감성개념 한가지로 포장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축소,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더러 해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낳기 때문에 필자는 이제 언론에서도 이 두 개념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기를 권해보는 바이다.


물론, 기업을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는 개개인의 EIQ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가 워낙 위험 수위에 이르러 있기 때문에 EIQ의 문제를 반기업정서로 대표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겠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 즉 반기업정서는 EIQ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고 위험수위에 이르러 있다는 점에서 먼저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 실태와 문제점부터 개관해 보기로 한다. 반기업정서에 관해 여러 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행하였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과의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는, 작년 초 중앙일보에서 조사한 내용을 원용하여 살펴보면,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국민은 10명 중 6명이 대기업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계는, 사회주의 옷을 입고 시장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 인민들의 경우 10명 중 9명이 대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실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표 1> 한중일 3국 비교 1: 기업 전체 및 대기업에 대한 반감

우리 사회에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가? 그 이유는 급속한 압축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력집중, 부적절한 정경관계의 반복적인 관찰, 기업의 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 및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의식(noblesse oblige)의 결여, 경제교육의 문제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낮은 EIQ의 원인에 대해서는 추후 종합적으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업, 그 중에서도 특히 대기업을 곱지 않게 본다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사회적 가치관이 정책형성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즉 감성영역의 문제가 합리 영역의 공공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정치 지도자가 ‘기업가적 리더쉽(entrepreneurial leadership)’보다는 대중 참여를 강조할 경우 반기업적인 정책이 채택될 가능성은 당연히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업, 경제단체, 그리고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구체적인 정책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정책결정계층과 정책의 선택을 놓고 협상(?)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반면, 국민적 정서나 가치관이 정책에 투영되는 과정(정책결정의 정치경제학)은 소홀히 취급해 왔다. 예를 들면, 이들은 80년대 만들어진 각종의 대기업 규제가 경제학적 논거가 부족하고 21세기 개방경쟁 환경과 맞지 않으니 시장친화적인 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정치권과 정부에 대해 역설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거꾸로 대기업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이 나라에서 기업한다는 것에 좌절감을 나타내고, 정치권과 정부의 구태의연한 경로의존성 때문에 미래가 불확실한 이 나라에서 길게 내다보는 투자를 계획할 수도 없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정치권과 정부의 정책행태에 많은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에 앞서 ‘기업을 곱지 않게 보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서 연유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易地思之라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기업들이 가능한 한 소비자를 상대로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똑같이 정치가란 선거에서 어떻게 하든 많은 표를 얻어야 하는 입장에 있는데 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선거구민의 (반기업) 정서에 영합하는 게 쉽지, 국가의 앞날을 위한답시고 당장에 표를 잃을 일을 자청하겠는가? 또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정치권에 예속되어 있는데다 기업에 고통이 가는 규제일수록 규제당국의 재량권(권력)이 세지는 장점이 있는데, 대승적 차원에서 감히 사회적 가치관에 역행하고 권력을 스스로 포기할 관료가 어디 그리 많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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