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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판결의 의미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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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판결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이를 두고 한 국회의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한 사법쿠데타라고까지 비판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판결은 수도이전이라는 사안의 중요성을 잘 드러낸 명쾌한 판결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어본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판결이 수도이전을 반대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수도이전의 찬반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도 표출하고 있지 않다. 단지 수도이전이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에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지난번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은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논의도 적절치 않다. 헌법은 삼권분립을 통한 국가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 중 어느 한편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져서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고 독재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번 결정을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판결이며 나아가서 사법쿠데타라고 한다면 지난번 국회가 대통령의 탄핵을 의결하였을 때에 헌재가 이를 기각한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두 번 모두 헌재가 국회의 의결과는 반대되는 판결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입법권의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 입법권은 헌재의 결정과 같은 사법권에 의하여 견제 받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이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을 두고 입법권이 무시되고 이를 통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상당수의 법률에 대하여 위헌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나 실제로 위헌판결이 나온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적다. 헌법재판소가 생긴 1988년 이래로 지금까지 처리한 총 9,762개의 사건 중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등으로 처리된 경우는 모두 380건으로서 전체 사건의 3.9%에 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헌재가 의도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는 해석도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번 판결의 경우 대통령 탄핵의 경우와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에 대한 위헌문제를 스스로 제기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사건의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자동적으로 이를 판결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수도이전과 같은 법률의 위헌문제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위헌소송을 제기하여야만 하며 헌법재판소가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에 대해서 가장 많은 논란은 관습헌법에 대한 것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통치이념과 가치관을 가장 압축하여 표현한 문서이다. 따라서 헌법이란 문서가 가져야 할 생명력은 유연성이다. 미국의 중학교 사회교과서 American Civics에서도 헌법의 생명력은 그 유연성(flexibility)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200여 년 전에 씌어진 문서가 어떻게 과학문명과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크게 바뀐 현대 미국의 문제를 가늠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미국 헌법의 유연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헌법의 유연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법은 헌법개정(amendment), 관습(custom) 그리고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한 것은 구체성이 결여되었으며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헌법이란 짧은 문서에 모든 중요한 사항에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을 다 기록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처럼 상세한 규정은 헌법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것이며 해석 자체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헌법재판소도 불필요한 기관이 될 것이고 따라서 삼권분립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는 아주 간단한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헌법을 고치는 것이 쉬운 일인지 또는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 쉬운 일인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헌법은 건국 이래 벌써 7번을 고쳤으나 수도는 서울에서 바뀌지 않았다. 어떤 것이 쉬운 일인가? 수도를 옮기려면 적어도 헌법 고치는 정도의 수고와 국민적 합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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