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어떻게 볼 것인가?

08. 5. 2.

0

최충규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및 정부부처간 공방이 뜨겁다.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경제부처는 연기금의 수익률 제고, 경제회복,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과 보건복지부는 연기금의 안정성,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하며 그때까지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적절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연기금은 기금관리기본법 제3조 제3항에 의거 주식투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기금의 설치목적과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금운용계획에 반영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기획예산처)는 지난 6월 동 조항을 삭제하여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자유화하는 개정법률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총 57개 기금 중에서 개별법에 의해 주식투자가 금지된 14개의 기금을 제외한 국민연금 등 43개 기금의 주식투자가 전면 허용된다.


현재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규모는 2003년 말 기준으로 112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 규모는 2003년도 중앙정부 일반예산 118조원에 버금가는 수준이고, 작년 국내총생산 721조원의 17%에 해당하며, 2003년도 말 주식시가 총액 374조원의 33%에 이른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이 우리경제와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얼마나 클 지를 가늠케 한다.


여당과 경제부처의 고민은 이렇다. 국민연금제도는 1998년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2035년에는 적자가 발생하고 2049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현재 100조원을 넘고 있고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인데 대부분 채권에 묶여있어 수익률 제고와 기금소진 지연을 위해 주식투자 등 투자다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과 같이 경제가 침체되어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할 일 많은 정부는 연기금을 동원해서라도 경제회복을 돕고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시급하다. 더군다나 요즘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KT, 포스코, 국민은행 같은 국민기업들도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갈 위험이 있고 따라서 연기금이 기관투자가로 나서 국내 증시의 안정화를 꾀하고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도와야 하지 않는가?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지만 꼼꼼히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주식의 투자수익률이 다른 금융상품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주식투자의 위험도 또한 높다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1999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수익률은 137%에 달했지만 그 다음 해인 2000년에는 -52%였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기금의 주식투자도 좋지만 안정성과 전문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연금과 비슷한 성격의 장기자금을 운영하고 있는 일반 생명보험회사의 경우도 주식투자 비중이 5% 미만이고, 과거 3년간의 주식시장 침체로 연금자산의 1/3을 잃은 영국의 민간 연기금이 최근 연기금 보장기구의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둘째,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투입되면 국내 주식시장이 과연 부양되고 안정화되는 것인가? 물론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위축되고 개인 및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시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 증시에 투입될 자금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배를 받는 연기금이 대거 주식시장에 투입되면 정부와 민간투자가들 사이의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오히려 건전한 민간투자가들이 증시에서 축출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정부의 간섭과 정책변화로 인해 증시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연기금의 투자와 운용이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에 대비하여 연기금이 기관투자가로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되는 것 아닌가? 사실 일부 대기업이 외국인에 의한 심각한 경영권 위협에 직면하여 정부에 대하여 이러한 요구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연기금 자체의 지배구조 개선과 독립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러한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정부에 의한 민간기업 지배가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관치경제, 새로운 정경유착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기금이 특정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 기업의 주식을 집중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연기금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 기업의 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캘퍼스(CalPERS: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는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고 또한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금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연기금의 규모가 수백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연기금의 투자 다변화와 수익률 제고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의 안정성이 위협받아서는 안되며, 그렇기 때문에 기금운용의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연기금을 통한 정부의 간섭이 배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기금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철저히 연기금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연기금이 정부를 대신하여 증시부양이나 특정기업의 경영권 이전 또는 방어에 활용되어서는 곤란하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