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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행정조사와 규제개혁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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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익

'80년대 이후 역대정부는 행정규제 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국정 책임자의 의지만으로 규제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자, 정부는 법을 제정하여 규제를 제도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다른 법의 규제를 이 법으로 폐지할 수 있게 한 '기업활동규제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모든 규제를 심사하여 정비할 수 있도록 한 '행정규제기본법'이 대표적이다.


규제를 집행하는 행정조사에는 무관심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이 미흡하여 창의적인 경제활동이 어렵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집권 초 규제개혁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현 정부도 금년에 '규제개혁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다시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년 이상 규제개혁이 국정의 우선과제로 추진되었음에도 규제개혁에 별 성과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투자, 자금조달, 인력활용 등 핵심적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정책이라는 이유로 유지되고 세계화 시대에 국제기준보다 과도한 규제가 적지 않은 탓이 크다. 하지만 규제의 내용 못지않게 규제를 실제 집행하는 방법상의 문제에도 상당부분 기인한다. 범죄를 수사하는 사법조사에는 인권보호를 위한 법제가 마련되고 정치권에서 많은 관심을 갖지만, 기업의 규제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조사에는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보장하는 법제도가 미비하고, 조사방법도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7,500 여건의 규제를 이행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부처에서는 수시로 기업현장에 나와서 조사하고, 준수하지 않은 경우 엄청난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형사고발 등의 제재를 가한다. 그런데 외국에는 없거나, 적절한지 않은지 시비가 끊이지 않는 규제에 대해서도 행정조사와 제재를 받는다면 기업이 느끼는 규제의 강도는 클 수밖에 없다. 법위반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조사받는다는 사실이 외부에 발표되면 우리의 법률문화상 그 기업은 위반행위를 한 것으로 인식되어 이미지 하락 등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규제와 행정조사는 동전의 양면


그동안 역대정부는 규제 수를 줄이거나 절차를 개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행정규제가 제대로 준수되고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지, 그렇지 않다면 규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계획은 근사하게 수립하지만 사후관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전통적인 행정관행이 규제개혁에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행정규제와 행정조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7,500 여건의 규제 중 인허가에 관한 일부 규제를 제외하면 규제는 행정조사를 통하여 집행된다. 그런데 행정조사 방법이 낙후되면 규제개혁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현행 행정조사는 법위반 혐의 파악과 무관하게 '일제조사', '투망식 조사' 관행이 지속되고, 같은 사안에 대해 여러 부처 혹은 기관이 중복적으로 조사한다. 조사권한과 제재강도는 강화되어 조사결과에 따라 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으나 부당한 조사에 대한 권리구제장치는 매우 미흡하다.


행정조사가 이같이 운영되는 것은 1차적으로 행정조사에 관한 법제가 미비한데 있다. 세무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법에서는 '필요한 경우', '직무상 필요한 경우' 등에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행정조사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다. 행정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 하에 조사권한이나 제재를 강화하고, 규제준수도(regulatory compliance)를 고려하지 않고 규제를 양산하는 행정편의적 사고의 탓도 크다.


'행정조사에 관한 법률' 제정해야


규제를 본격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규제는 물론, 그 집행수단인 행정조사의 문제를 함께 개선하여야 한다. 즉 행정조사를 규제개혁과 연계하여 미비한 제도나 관행을 정비할 때이다. 행정조사 제도와 관행이 개선되면 규제개혁의 효과만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행정개혁의 핵심인 부패척결, 민원처리 개선, 행정절차와 행정재량 행위의 투명성 등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행정조사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여 조사대상 선정, 조사요건, 조사절차와 부당한 조사에 대한 구제장치 등을 법에 규정하여야 한다. 또한 공동조사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부처간의 중복조사를 줄이고, 조사기법을 개선하여 법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만을 조사하여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행정조사의 대체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준법감시인 제도 도입, 신고포상제도와 집단소송 등 기업에 대한 감시장치와 피해구제 수단이 크게 정비되어 종전과 같이 해당 부처가 반드시 현장조사를 하거나, 직접 제재할 필요성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신종익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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