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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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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천성과 이상의 충돌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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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얼마 전에 헌법재판소는 호주제가 헌법과 불합치하다고 판결했다. 즉 호주제는 헌법에 어긋나며 국회는 해당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호주제는 호주가 가족을 대표하는 제도다. 호주는 민법상 가(家)의 장으로서 가족을 통솔하는 자이다. 호주는 일가(一家)의 계통을 승계한 자(호주상속인), 분가한 자, 기타 사유로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가 된다. 그리고 민법은 가족을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해서 호주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호주제의 위헌 소송을 낸 시민단체들은 호주제가 남성 우월주의에 입각했으므로 성적 평등의 이상에 어긋나고 남아 선호 사조를 부추겨서 여아 낙태와 같은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호주상속의 순위가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남자, 2)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3) 피상속인의 처, 4) 가족인 직계존속여자, 5)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이므로 남성은 분명히 우월적 지위를 누린다. 유럽은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치관에 혼란을 낳고 가족 해체가 가속될 것이라고 호주제를 변호해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호주제는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 집단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법적 장치"라고 판단하고서 "이는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 많은 고통과 불편을 가져오고" 있으며 "이는 신분관계 형성에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것으로 남녀평등과 개인의 존엄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평가했다. 즉 호주제를 주로 남녀평등의 이상에 어긋나는 제도로 본 것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듯하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정된 순서였다"는 신문의 평가는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들어다보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아주 얕았고 그래서 올바른 맥락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드러난다. 크게 보면 호주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부정적 결정이 안은 문제들보다 그렇게 올바른 맥락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훨씬 큰 문제다.

먼저, "왜 호주제가 애초에 도입되었을까?"하고 소리내어 물은 사람이 드물었다. 법적 제도로의 호주제는 1915년 우리 법 체계 안에 도입되었다. 당시 일본민법의 규정을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제국헌법이 독일의 제국헌법을 모형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일본 민법은 본질적으로 서양의 법 체계에 바탕을 두었다. 그리고 서양의 법 체계는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과 그리스 문명의 법들과 그것들을 발전시킨 로마의 법 체계에서 유래했다. 그 모든 법 체계들에서 호주의 원형인 가장의 개념이 존재했다. 즉 호주제는 보편적 기구였다. 따라서 우리는 일단 호주제가 자연스럽고 뿌리가 깊은 기구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여성운동가들은 이내 반박할 것이다. 호주제는 남성 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뻔한 것을 지적한 얘기이며, 남성 우월주의가 모든 사회들에서 보편적으로 나오는 까닭을 설명하고 않고 그대로 남겨 둔다. 어떤 행태나 풍습이나 기구를 남성 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깊은 설명은 아니어서 그다지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성 우월주의가 보편적인 사정에 대한 설명이 없이는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남성 우월주의와 호주제를 포함해서, 결혼과 가족에 관한 풍습들과 사회 기구들은 거의 모두 여성 족외혼(female exogamy)의 풍습에서 나온 현상들이다. 비록 몇몇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인류 사회들은 일반적으로 여성 족외혼을 채택해 왔다. 즉 결혼할 나이가 된 여성들은 자기가 태어난 집단(natal group)을 떠나 남편의 집단에 들어간다.

이 관행은 필연적으로 남녀 사이에 권력의 구조적 불균형이 나오도록 만든다. 남성은 가까운 친족들과 연합하여 가족 안의 사회적 위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집단으로 혼자 들어온 여성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마련할 길이 없다. 특히 새 집단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갓 들어온 여성은 먼저 들어와서 나름의 권력 기반을 마련한 여성들의 호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시집살이'는 여성 족외혼을 채택한 사회들에서 보편적 현상이다.

이처럼 남성 우월주의와 호주제의 원천은 여성 족외혼이다. 여성 족외혼이 보편적 결혼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는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호주제의 폐지가 바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여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 물음과 만난다. "왜 여성은 족외혼인가? 왜 남성 족외혼은 그리 드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온 뒤에야, 우리는 남성 우월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어떤 종(種)이 꼭 여성 족외혼을 채택해야 할 까닭은 없다. 언뜻 보기엔 오히려 남성 족외혼이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종들에서 생식의 과업은 주로 여성에 의해 수행된다. (생물학에서 여성은 보다 큰 성 세포를 생산하는 성을 가리킨다. 즉 정의에 의해, 생식의 과업은 주로 여성이 수행한다.) 따라서 가족을 여성 중심으로 이루는 것이 편리하고 실제로 남성 족외혼을 채택한 종들도 많다. 그런데도 왜 사람은 굳이 여성 족외혼을 고집해 왔는가?

지금 생물학과 인류학이 이른 지식 수준에서 가장 그럴 듯한 답은 높은 남성 부모 투자(male parent investment; MPI)다. 하등 동물들의 경우, 남성 부모는 생식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정자만을 제공한다. 좀 더 발달한 종들에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수컷이 먹이나 둥지를 제공한다. 그처럼 발달한 종일수록, MPI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경우, 남성 부모의 자식에 대한 투자는 매우 커서 실질적으로 여성 부모의 그것과 비슷하다. '기러기 아빠'는 최근에 나온 사례다.

사람의 아주 높은 MPI는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오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의 유아 양육과 교육을 가능하게 했다. 실제로 사람의 아주 높은 MPI는 인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들 가운데 하나며 인류 문명을 가능케 한 힘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모두 높은 MPI가 가능한 사내들을 자신들의 배우자로 삼으려 애쓴다. 높은 MPI를 제공할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성공적 생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당연히 가임기의 여성들은 그런 배우자를 고르는 데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MPI는 남성이 자기 아내가 낳은 자식들이 정말로 자기 자식들임을 확신할 수 있을 때에야 나올 수 있다. 남의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들이 재생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오쟁이 진 사내(cuckold)'보다 더 치욕적인 존재는 없다. 자연히 모든 남성들은 자기 아내가 자기 자식들만 낳도록 갖가지 방책들을 강구한다.

거의 틀림없이 여성 족외혼은 높은 MPI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로 나왔을 것이다. 남성의 친족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그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접촉하는 기회를 차단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 남성의 자식들은 모두 그의 가족의 가까운 친족들이지만. 여성이 외간 남자의 자식들을 낳으면 다 유전적 관계가 없는 남들이다. 남성 족외혼의 경우엔 사정이 정반대다. 여성이 낳은 자식들은 아버지가 누구인가 가리지 않고 모두 그 가족의 친족들이다. 따라서 여성의 가족은 장가든 사내의 자식들을 선호할 까닭이 없고 여성이 다른 사내들의 자식들을 낳는 것을 굳이 막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은 자기 아내들이 자신들의 자식만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 족외혼을 선호했을 터이고 여성들은 높은 MPI를 얻기 위해 여성 족외혼에 동의했을 터이다. 여성들로선 남성 족외혼의 여러 이점들보다 여성 족외혼에서야 가능한 높은 MPI가 더 가치가 있었을 터이다. 즉 여성 족외혼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였다. 여성 족외혼은 여성들이 동의했으므로 생겨나고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사정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급진적 여성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까닭일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거나 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전통적 가족체계가 자신들에게 다른 어떤 구도보다도 큰 혜택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급진적 여성운동이 가족 제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물론 여성 족외혼에서 나온 남성 우월주의는 자칫하면 흉측한 모습으로 변태해서 여성들을 괴롭힌다. 여성 할례, 축첩, 조선조의 기생과 같은 공식적 성적 노예 제도, 회교권의 야만적 여성 억압과 같은 끔찍한 일들은 이내 눈에 뜨이는 변태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여성 족외혼이나 남성 우월주의의 목적이나 본질은 분명히 아니다. 그것들을 바로 잡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여성 족외혼이 아주 오래 된 전통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유인원들은 여성들이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떠나 남성의 집단으로 들어가는 풍습을 지녔다. 따라서 사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그리고 긴팔원숭이(gibbon)의 공통된 조상도 여성 족외혼의 풍습을 지녔었다고 추리할 수 있다. 현재 고생물학의 정설은 유인원이 다른 영장류 종들로부터 1800만 년 내지 2000만 년 전에 갈라졌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갈라진 것은 대략 700만 년 전이었다. 따라서 사람의 여성 족외혼 전통은 아무리 줄잡아도 1000만 년을 훌쩍 넘는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여성 족외혼을 불변의 사회환경으로 지니고 진화해온 것이다. 자연히 유전자들에 담겨진 우리의 천성은 여성 족외혼과 그것이 포함한 갖가지 사회적 기구들과 풍습들에 맞추어졌다.

이제 사람은 문명을 발전시켰고 그런 문명에 걸맞은 이상들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전통을 이상에 맞게 바꾸려 시도하게 된다. 성적 평등은 그런 이상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호주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천성과 이상 사이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호주제는 우리의 천성에 맞지만 우리의 이상에 거스른다.

그런 뜻에서 이 문제엔 반어적 측면이 있다. 여성 족외혼과 그것이 뜻하는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통해서만 높은 MPI가 가능했고, 높은 MPI를 통해서만 발전된 문명이 가능했고, 발전된 문명을 통해서만 성적 평등과 같은 인류의 이상이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성적 평등이라는 이상은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라는 눈에 보이는 악을 공격하고 그런 공격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원천인 여성 족외혼을 공격하는 것이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비록 눈에 이내 뜨이고 적잖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적 악으로 비치겠지만, 호주제는 뜻밖으로 깊은 뿌리를 지니고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다. 그것은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가족 제도가 질서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들 가운데 중심적인 것이다.

남성이 우선적으로 호주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호주는 가족의 유지에서 유전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이다. 가족의 구성원들 모두가 그와 유전적으로 가깝거나 그들의 배우자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가족의 유지에 바친다. 가족의 유지에서 가장 다음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남성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모든 남성 구성원들과 친족 관계에 있고 자신들의 어머니와 자매들과 유전적으로 아주 가깝다.

여성 구성원들의 경우엔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떠나 가족으로 들어온 여성의 경우, 자신의 친족은 모두 친정 식구들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태어나야, 비로소 그녀는 가족에 유전적 이익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녀가 친정에 대해서 지닌 유전적 이익의 발현을 억제하는 일은 가족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 일을 하는 장치다. 가족에서 태어난 여성들의 경우엔 그녀들의 궁극적인 유전적 이익은 그녀들이 낳을 자식들에 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은 다른 가족들의 구성원들이다. 자연히 그녀들의 가족에 대한 충성심은 갈수록 약해진다. "딸자식은 기둥뿌리까지 뽑아간다"는 말은 이런 경향을 가리킨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호주를 남성이 우선적으로 맡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오직 남성 구성원들만이 가족에 온전한 유전적 이익을 지녔고 가족의 유지에 헌신적이리라고 기대된다.

물론 가장이라는 제도를 아예 없애는 길도 생각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은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에서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람은 '집단적 마음(hive mind)'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사회적 집단들은 특정 개인에게 결정 권한을 많이 위임해서 집단을 대표하도록 한다. 회사엔 사장이 있고 나라엔 대통령이나 수상이 있다. 그렇게 해야 집단의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을 대표하는 가장이라는 제도는 실질적으로 필연적이다.

사람의 가족이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두는 한, 남성 우월주의는 필연적이고 가장이라는 제도도 따라서 필연적이다. 남성 우월주의와 가장 제도가 없어지면 여성 족외혼의 본래 목적인 높은 MPI를 이룰 수 없게 되고 우리가 아는 가족 제도는 피륙이 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여성 족외혼과 MPI라는 맥락에서 남성 우월주의와 호주제를 살피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호주제를 폐지한 것은 신중한 처사라 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루려면, 우리는 아주 심중하고 어려운 물음 두 개에 먼저 답해야 한다. "여성 족외혼의 풍습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근본적 물음들에 대해서 내 대답은 회의적이다. 우리가 가볍게 옆으로 밀어내기엔 여성 족외혼이 시행된 1000만 년이 넘는 세월은 너무 무겁다.

합리적 태도는 성적 평등에 관한 논점들을 적절한 맥락 속에 놓고서 그것들의 유래와 기능들을 먼저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들과 변태적인 것들을 구별할 수 있고 무엇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가 판별할 수 있고 무모한 수술로 생살을 도려내는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합리적 태도에서 불가결한 요소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여기는 것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서로 다르고 그런 차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평등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양성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혁명을 일으킨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라이버스가 지적한대로, 상대 성은 최다의 살아남는 자식들을 낳는 데 연관이 있는 자원이므로, 우리는 결과적으로 양성을 다른 종들인 것처럼 다룰 수 있다. (one can, in effect, treat the sexes as if they were different species, the opposite sex being a resource relevant to producing maximum surviving offspring.)" 그렇게 "다른 종"들을 같다고 여겨서 산술적 동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리석고 아주 위험하다.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목표는 그들의 배우자들의 MPI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늘리려 애쓰는 이들은 MPI를 격려하는 기구들과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MPI가 부족한 가족들이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특권을 누릴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의 여성들이다. 그리고 임신했거나 수유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보다 효율이 높은 사회적 투자는 없다. 실제로, 태아들이 좋고 안정적인 환경을 누리도록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사람의 운명은 실질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특권엔 나름의 책무가 따른다. 산술적 동등을 추구해서 그런 책무를 무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특권을 해친다.

성적 평등이 워낙 중요한 이상이고 호주제는 우리 감성을 크게 거스르는 제도여서 호주제가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터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기구가 폐기되는 과정은 그 나름의 부차적 효과들을 낳는다. 성적 평등의 이상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적절한 맥락에서 살피고 논의하려는 태도는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비용을 줄일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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