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국판 뉴딜정책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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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원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공식적인 진단이나 분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쪽에서 소위 한국판 뉴딜정책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오늘의 우리 경제가 1930년대 공황당시의 미국경제상황에 견줄 만큼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만들어낸 뉴딜(new deal)이라는 용어가 정확하게 어떤 정책을 의미하는지는 경제사학자들 조차도 분명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보수준의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케인지안 재정확대 정책의 한 사례로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한국판 뉴딜정책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신행정수도 건설이 뉴딜정책이라고 주장했던 어떤 여당 의원의 이야기나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무산된 후에 이런 이야기가 본격화되는 것을 보면서 공공부문의 토목사업을 크게 일으켜서 경기를 부양해 보려는 의도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최근에 어떤 언론인으로부터 이런 정책이 이 시점에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려면 이러한 정책의 효과나 목적이 무엇이고 현재의 우리 경제상황이 그러한 효과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 우리 거시경제가 매우 어렵고 이러한 상황에서 조기에 벗어날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경기를 자극하기 위한 어떤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는 일단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 한국판 뉴딜정책이라는 것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단순한 케인즈 거시경제이론에 의하면 재정지출의 확대는 이른바 승수효과를 통해 고용확대와 생산증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업이 많은 상태이고 더구나 금리인하도 약발이 듣지 않는 상황임을 생각할 때 공공부문에 의한 지출확대는 매우 적절한 정책수단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뉴딜정책이 정말로 수렁에 빠진 우리 경제를 끌어 올려서 2만 불 그리고 3만 불 고지를 향해 힘찬 전진을 시작하게 하는 돌파구를 마련해 준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이렇게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짓누른다. 재정정책은 태생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비교적 최근의 거시경제이론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재정조기집행에다가 추경 등 재정확대를 위한 조치들이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대외여건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재정조치의 강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거나 그러한 조치 때문에 더 나빠질 것이 그렇지 않게 되었으므로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경제의 최근 사태는 순환적인 불황현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라고 본다. 재정정책이 승수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은 단순히 수요의 부족 때문에 경제가 위축되었을 때 정부지출에 의한 펌프질이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자극하여 소비가 늘고 뒤이어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지출확대가 민간부문으로부터 신통한 반응을 불러내지 못한다면 다른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정상이다. 무엇보다도 참여정부 출범이후 급속하게 확산되어온 불확실성의 안개와 우리경제에 대한 신뢰의 급락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투자의욕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에 한두 번쯤은 귀를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재정지출확대정책은 짧고 부분적인 소위 “반짝 효과” 이상을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정지출확대정책은 좀 더 강한 강도로 재시도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재정건전성은 더욱 심하게 훼손될 것이다. 재정사정이 나빠지면 어떤 단계에 가서는 조세부담률을 높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적자재정을 통한 경기확대정책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채의 누적과 이것을 만회하기 위한 세금강화의 부작용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세금을 더 거두어들일 때 나타나는 사회적 비용 즉 초과부담이라는 것이 더 거두어들인 세금의 수 십 퍼센트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는 재정을 통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정책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경제의 건강한 성장이 없으면 2만 불 시대의 비전은 신기루일 뿐이다. 우리경제가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성장해 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획일적 평등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에서부터 문화·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요컨대 불확실성과 불안의 안개를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라는 것이다.
곽태원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twkwack@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