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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평준화 정책은 과연 평등한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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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우리나라 교육의 큰 이념은 평준화다. 초ㆍ중학생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추첨에 의해 자기 학군 내 학교에 배정된다.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평준화 정책의 뒤에는 평등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성적 좋은 아이들만 좋은 학교에 가는 현상을 막아서 어릴 때의 성적이 성인이 돼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정책은 의도와 결과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평준화 정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일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녀의 좋은 학교 입학 가능성을 좌우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평준화가 있든 없든 좋은 학교는 생기기 마련이다. 평준화 정책 아래서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좋은 학교가 생겨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이른바 강남 8학군으로 모습을 나타냈지만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대개 학군이 좋다. 그것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좋은 학군일수록 집값이 비싸고, 그런 동네로 이사 가려면 부모가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준화 이전에는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평준화한 뒤에는 부자 부모를 둔 학생일수록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뜻은 좋았으나 결과는 정반대


부모의 경제적 능력보다는 성적순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체제가 더 평등하다는 데는 많은 분이 동의할 것이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학생의 교육기회가 달라지는 현상은 국내에서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요즘 많은 사람이 자녀들을 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고 있다. 그 아이들은 대학을 마칠 때쯤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제화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들에게 영어 실력의 차이는 성인이 된 뒤 성공의 확률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평준화와 조기유학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평준화는 교육의 공급자인 교사와 교육 관료를 학생ㆍ학부모의 요구에 둔감해지게 만든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늘 변하기 마련이고 교사와 학교가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는 미래의 세상에서 필요한 영어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데, 교사와 학교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변하든 변치 않든 어차피 평준화인 마당에 누가 변화의 고통을 참아내려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는 한국의 학교를 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해 주는 외국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 지금의 그 아이들은 한국에 남아 평준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격차를 벌려 놓고 있을 것이다. 평준화 때문에 부모 세대에서의 경제력 격차가 자녀들 간의 격차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교육에서 평등의 이념을 완전히 뽑아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기초적 교육을 못 받는다면 서글픈 일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자녀에게 기초 교육을 시켜주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해법은 평준화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극빈층 자녀에게 수업료 쿠폰 같은 것을 지급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게 해보자. 그렇게 되면 돈이 없어 교육을 못 받는 일은 없어진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은 스스로 수업료를 내게 하는 것이 좋지만, 만약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전 국민에게 수업료 쿠폰을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정책의 핵심은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학교를 선택하게 하는 데 있다.


학교의 재정은 학부모가 제출한 수업료 쿠폰 액수만큼 국고에서 지원 받게 된다. 이런 체제에서는 학부모의 선택을 받은 학교만이 존립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학교는 운영자금 부족으로 결국 폐교의 운명을 면할 수 없다. 너무 가혹해 보이긴 하지만 학교가 존재하는 궁극적 이유는 학생들 때문이 아닌가.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학교라면 존재할 이유도 없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 줘야


물론 우리나라의 입시 공부에 그런 일반론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입시준비를 통해서 얻는 지식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는 관련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학시험 방식에 있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대학 입시가 대학들의 경영전략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입시가 기업의 입사 시험처럼 자기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뽑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입시가 기업의 입사 시험처럼 자기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뽑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만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문제로만 아이들을 뽑게 되었다. 입시 방식의 평준화인 셈이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 정작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는 지식만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법은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대학들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춘 학생을 뽑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의 발전이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내보낼 때 얻어지기 때문에 대학들은 결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생을 뽑게 된다. 아이들의 입시공부도 사회에 나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갖추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입시 공부를 지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교육 평준화는 평등도, 효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해법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에 대한 선택권을 돌려주는 데서 찾아야 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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