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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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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투기 근절은 마땅하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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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배

부동산ㆍ원유ㆍ원자재 등의 가격이 급등했을 때 가격 변동의 원인 중 하나로 매번 거론되는 것이 바로 ‘투기’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투기 억제를 통한 가격 안정이 어김없이 제시된다. 얼마전 대통령도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해서라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투기를 사회의 골칫거리로, 발본색원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투기란 용어에 불법적 색채를 너무 덧칠해 놓은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최근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퇴진하는 사태에서도 이 같은 덧칠 작업은 어김없이 이뤄졌다. 언론에 ‘의혹’으로 보도된 이들의 행위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적 사기 행위인데도 죄목(?)은 생뚱맞게도 투기였다. 투자와 투기가 쉽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던질 ‘투(投)’자가 쓰이는 것을 보면 투자든, 투기든 모두 위험이 수반돼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부 정보를 이용한 행위에는 이러한 위험이 없으므로 투자도, 투기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 같은 적절치 못한 용어의 사용은 우리 사회에 투기를 ‘사기행위’와 동일시하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켜 놓았다. 급기야 몇 년 전 모 대학 여교수가 아파트를 40채나 소유하고 있다는 기사가 일간지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정당한 소득을 통한 부의 축적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으로 사회적 공분만 불러일으킨 채 말이다.


투기로 실수요자 피해?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하는 또 다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투기가 설사 합법적인 경제행위라 할지라도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여 가격이 상승하면, 그 재화를 꼭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는 무거운 부담을 져야할 뿐 아니라…”(고등학교 경제, 오영수 著, 2003)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부동산 투기의 경우 투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해 실수요자인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된다고 말하고 있다.


투기가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메커니즘은 가격 상승을 통해서다. 따라서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우선 투기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투기를 ‘가격의 상승 혹은 하락을 예상해 기대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투기는 가격 상승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 자체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제학적 정의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부동산 투기는 서울 강남이든, 행정도시 개발 예정지구든, 혹은 몇몇 개발지구 등 ‘부분적인 현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국민소득 증가 시기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투기가 규제완화, 정책변경 등으로 개발가능성, 국민소득의 증가 등에 따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의 결과이지 가격 상승의 원인이 아님을 방증한다. 만약 부동산 투기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었다면 부동산 가격 상승은 부동산 시장의 일반적ㆍ장기적 현상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투기꾼들이 지역ㆍ시기에 관계없이 부동산 가격을 좌지우지했을 테니까 말이다.


시장 안정 기능에 주목해야


어떤 이들은 투기가 가격 상승의 1차적인 원인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가격을 추가적으로 확대하는 2차적 원인이 될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투기가 없었더라면 가격이 안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타당성이 부족하다. 과거 1, 2차 오일쇼크나 매점매석 등과 같이 지정학적 혹은 자연적 환경 등에 의해 공급 독점이 가능한 비경쟁적인 시장 상황에서의 투기는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문제이지 투기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시장만 경쟁적으로 작동한다면 투기는 균형가격에 빠르게 도달하게 해 줌으로써 급격한 가격변동을 사전에 분산해 실수요자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일례로 중동의 정정 불안 등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정으로 3개월 후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고 하자. 투기가 전혀 없는 경우 실수요자들은 3개월 후의 유가 상승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함은 물론이고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필요한 원유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수요자가 미리 원유를 확보하려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 유가가 전망보다 작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경우 실수요자들에게 예기치 못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투기자가 존재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투기적 거래로 인해 유가 상승의 일부가 현 시점으로 앞당겨지면서 정작 3개월 후에 가서는 유가가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투기자가 존재함으로써 인해 실수요자는 원유 확보의 부담과 함께 예상과는 다른 가격 변동에 대한 위험을 모두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투기는 근절돼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대부분의 자산시장에서 자산이 제대로 된 균형가격을 찾도록 도와주고 시장의 위험을 소화하는 매우 유익한 역할을 수행하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주어진 사실을 정확하게 보아야 문제가 해결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지 못하면 잘못된 해결책이 나온다. 이제는 투기꾼들이 챙기는 소득만 보지 말고 올바른 투기가 수요ㆍ공급을 원활히 하는 기능이 있음을 ‘사실적’으로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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