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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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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문제 많은 분양가 원가연동제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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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최근 한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한 보고서가 눈길을 끌었다. 1987년 2분기부터 2003년 2분기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 결과 경기 활성화 대책은 효과가 없었던 반면 억제책은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켰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런 결과를 초래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정책의 근본적인 부적절함”이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의식주 문제에 관련된 정책이 이런 평가를 받는 상황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현 시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보고서의 분석 대상 기간 이후에 입안돼 이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인지 냉정히 따져 보는 일일 것이다.


건설회사의 초과이윤이 문제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아파트 분양가 원가연동제이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과거 정부가 주도했던 부동산 정책의 ‘근본적 부적절성’을 벗어던지는 혁신적 제도라고 주장한다. 이에 정부가 마지못해 시행하기로 한 것이니만큼 그 성과에 큰 기대를 가져봄 직도 하다. 하지만 아파트 분양가를 원가에 연동시키는 가격 제한을 통해 주택 가격의 급등을 억제하겠다는 정책은 가격 안정을 통해 국민의 주택 보유를 보다 쉽게 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보다 수급 교란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의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이유는 원가를 가장 중요한 가격 결정의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하겠다는 이 정책이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양가 원가 연동제는 아파트 건설업체가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 과다한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존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주택 가격의 상승을 유발한다는 문제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가격 제한을 통하여 공급자의 초과이윤을 제거함으로써 주택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현재 국내 부동산 시장의 초과이윤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에 있다. 초과이윤이란 시장가격이 원가에 공급자의 적정 이윤을 더한 수준을 초과하는 부분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쟁시장에서의 균형가격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결정되며, 공급곡선은 원가와 적정이윤의 합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경쟁시장의 모든 균형가격은 공급자의 원가에 적정이윤을 더한 수준이며 초과이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가격이 균형 수준을 초과하는 상황은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며, 이때 시장가격은 제한된 공급량에 해당하는 수요곡선상의 가격으로 결정된다. 즉 시장에 초과이윤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기 때문이며, 공급곡선이 가격 결정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점 혹은 담합과 같은 공급자 요인에 의해 높은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경우 가격 제한을 통해 초과이윤을 제거하는 것이 유효한 가격 안정책이 될 수도 있다. 인위적 공급 제한에 의한 초과이윤의 획득이 불가능해지는 경우 공급량 증대를 통해서만 이윤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급자의 이윤추구가 공급 확대에 따른 초과 수요의 해소로 이어지게 되며, 장기적으로 가격 하락과 공급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장의 공급 부족이 공급자 요인이 아닌 경우, 즉 공급자의 의지에 의해 공급량을 임의로 확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가격 제한은 유효한 가격안정책이 될 수 없다. 인위적 가격 제한이 공급자의 초과이윤을 제거하더라도 초과 수요가 존재하는 한 시장가격이 수요곡선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에 변화가 없으며, 초과이윤은 공급자에게서 최초 구매자에게로 이전될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신규 공급 가격은 공급곡선상에서, 유통가격은 수요곡선상에서 결정됨으로써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이 경우 공급 가격의 제한은 최초 구매자의 선별, 즉 공급 할당을 불가피하게 한다. 유통시장에서의 전매 제한은 암시장의 발달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 가격 안정은 전매 차익의 환수 등 수요 억제나 공급자에 대한 지원을 통한 공급 확대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전매이익 환수가 더 중요


분양가 원가연동제는 국내 건설업체들이 독점 혹은 담합에 의해 주택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상황이라면 유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의 분양 과열 현상이 서울과 수도권의 일부 지역에 국한될 뿐 전국을 기준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주택가격의 상승이 공급자의 초과이윤 추구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특정 지역의 아파트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것 또한 입지적 특성이나 개발 및 재개발 등의 제약에 의한 신규택지 부족 때문이지 건설업체들이 공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건설업체들의 초과이윤 박탈을 위한 아파트 분양가격의 인위적 제한은 장기적 가격 안정을 달성할 가능성보다 주택 시장의 수급을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욱 큰 것이다.


향후 주택가격의 안정을 위한 정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우선 주택 가격 자체에 대한 제한보다 전매차익 환수를 보다 엄격히 하는 가수요 억제와 수도권 인구의 분산화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된 초과 수요를 해소해 나가는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둘째로 고용 확대 등 때문에 부동산 경기의 부양이 필요한 경우에도 양도세제의 완화 등과 같이 주택수요를 자극하는 정책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공급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당장의 분양가 상승이 주택 공급자들에 의한 부당한 초과이윤 추구의 결과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가격 제한을 통해 이를 박탈하는 것이 장기적인 주택 가격 안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건호 (KDI정책대학원 교수, khlee@kdischoo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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