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안개 걷혀야 투자 는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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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최근 기업의 설비투자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 우려가 많아지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는 생산설비의 신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확충시킬 뿐만 아니라 자본스톡의 증가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한다. 최근의 설비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이 급격한 감소와 급반등을 보인 이후, 최근까지 설비투자 증가율이 낮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왕성한 자본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최근의 투자부진은 장래 성장잠재력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저조한 이유는 앞날에 대한 투자자의 확신이 없거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교적 많은 여유자금을 보유하고 있고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투자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고 있다. 과거에 투자는 부채 등 외부에서 조달된 자금을 이용하였으나, 최근 들어 기업의 수익성 개선, 기업들의 차입경영 자제 등으로 투자의 내부금융 조달비율이 높아졌으며, 특히 외환위기 이후 내부자금을 통한 투자자금 조달의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문제는 투자에 쓸 내부자금은 풍부한 상태이지만 기업들은 선뜻 투자활동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은 투자로부터 이익이 나는 사업에 투자할 것이고 더구나 현존하는 위험에 비해 투자이익이 많으면 적극 투자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투자된 자본은 현금화하기 어려운 투자의 비가역적인 속성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결정 시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불확실성이 현저히 줄어들 때까지 투자를 연기하게 된다. 현 상황은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나 투자시기를 고려하면서 투자를 연기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경우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설비투자액은 전체 설비투자액 중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규모 투자일수록 매몰비용이 크고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의 증폭이 중소기업 투자보다 투자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 투자를 감소시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기업에 영향을 주는 경제정책, 제도변화, 기업간 경쟁양태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경제환경에서 생성되기도 하지만, 정치·사회변화와 같은 경제외적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정책의 급격한 방향전환, 경제제도를 만드는 정치권의 불안정 등은 기업의 투자환경을 악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장환경이나 정책환경 전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정부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재규제의 일관성없는 기업정책을 상징하는 사례 중 하나이고 이 제도는 신규유망산업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한다. 이처럼 기업이 새로 투자할 분야로 자금배분을 제약할 수 있는 제도와 함께 수도권집중 억제정책과 같이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제한하는 정책들도 역시 기업투자의 걸림돌이다.
이 같은 정책과 제도들은 기업투자의 위험과 수익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투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일과 함께 비합리적인 제도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정책을 우선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시장적·반기업적인 정책과 제도 등 기업경영을 어렵게 하는 안개부터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기업투자가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