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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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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숙의 민주주의의 본질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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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熟議(deliberation)’라는 용어가 생각난다. 현 정부 초기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대화의 정치를 시작하였고, 각 행정부처 혹은 지방정부들도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국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천성산 터널 공사가 그랬고 원전폐기물센터 건립 과정이 그랬다. 심지어 한 방송국 프로그램의 광고 수주가 ‘국민의 의견’에 심판받아 영향을 받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현 정부의 잘나가는 386 세대들이 걸핏하면 쏟아내는 ‘숙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숙의’는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고 넉넉히 의논한다는 의미이다.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는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개인성을 강조하는 말이고, 넉넉히 의논한다는 의미는 상호간의 의견을 존중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숙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의견이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숙의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미국에서 부각되고 있는 대안적 분쟁해결방식(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을 살펴보자. 대안적 분쟁해결방식은 기존의 법정에서 다루어져 왔던 분쟁을 민간중재의 방식으로 해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식에서 강조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는 중립적인 중재자(neutrals), 분쟁의 신속한 해결(speed), 분쟁 비용의 절감(cost), 이 세 가지이다. 법정에서 기존의 법조인들에 의한 해결 방식이 아닌 민간 중재자들의 자발적인 해결 방식을 채택하는 참여적 의사결정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참여적 의사결정방식만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기존 법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기간 고비용의 분쟁해결을 탈피하여 신속한 해결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자는 데서 더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대안적 분쟁해결방식은 분쟁해결의 과정에서 참여적 의사결정방식을 통해 상호간의 공동의 이익을 도출해 내자는데 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성숙한 시민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지 않으면 쉽게 형성될 수 있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현 정부의 386 세대들이 주장하는 숙의 민주주의와 작금의 사회적 갈등 현상을 살펴보자. 많은 정부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갈등 표출이 현 정부의 숙의 민주주의에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무책임한 참여적 의사결정방식의 표출에 의한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은 결여되고 단지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개인성만이 강조되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숙의 민주주의의 한 단면만 강조되어질 때 빚어질 수 있는 결과로 여겨진다.


대안적 분쟁해결방식의 도입이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적 의사결정방식만을 차용해 온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제도화, 법제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무의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민간의 자발적인 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제도적인 장치, 그것도 최소한의 장치는 그 이후에 따라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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