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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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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세무행정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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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근

세무행정은 세법에 따라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을 수납하는 기능이다. 세금은 본래 납세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기쁜 마음으로 부담하는 기부금이 아니다. 세금에 관한 법은 권력적 강제력을 그 바탕에 깔고 있고 이를 집행하는 세무행정도 본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세무행정은 국민의 경제생활에 대해 간섭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게 된다. 즉 납세자가 스스로 계산해서 납부한 세금이 정직하고 법에 제대로 따랐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세무조사인 바, 이는 세무행정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러한 세무조사는 납세자의 재산권과 사생활권에 대해 침해적 성격을 본래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제 시기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납세자의 재산을 압류해서 공매하게 되는데, 그 절차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더욱 크다. 세무행정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종래부터 이를 권력적 행정작용우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세금의 본질은 나라의 운영경비를 국민이 부담하겠다고 동의한 산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납세의무는 헌법상의 신성한 국민의 의무이다. 그런데 세무행정 작용을 권력적이고 강제적인 작용만으로 본다면, 납세자인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적 지위는 세무행정 앞에서 허물어져 버린다. 결과적으로 납세자는 오로지 정부가 요구하는 돈만 내야 하는 봉과 같은 지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즉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과세권력에 굴종하는 대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주객의 전도이다. 이러한 잘못을 고치기 위해 현대에 와서 많은 나라들은 세금을 납세자 스스로가 계산해서 납부하는 신고납부제도를 채택했고, 그 신고납부에 명백한 잘못이 없는 한 세무행정기관은 함부로 세무조사를 할 수 없도록 하며, 설사 세금납부가 늦어지더라도 납세자의 재산을 압류하여 공매하는 절차는 법의 엄격한 절차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특히 1900년대 중반부터는 많은 나라들이 세무행정기관으로 하여금 납세자가 세금을 자진하여 신고납부 하는 일을 적극 도와주도록 하여 서비스기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구조로 크게 바꾸는 개혁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이는 세무행정의 권력적인 강제기능을 가급적 축소시키고 반면 납세자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납세자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지위를 다시 찾게 하여 납세절차에서 국민주권의 이념이 실현되도록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세무행정이 권력적으로 납세자에게 군림하고 납세자는 이에 무조건 굴종하는 시대를 경험한 바 있고 아직도 그러한 잔재가 세무행정관행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세법의 구조도 마치 사람이 세금을 내기 위해 태어나 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의 납세의무 외에 세무행정을 돕는 온갖 협력의무를 납세자에게 지우고 있다. 이러한 법제 하에서 세무조사는 난폭에 가까웠고, 억울한 세금에 대해 행정불복을 제기하면 대부분의 사건은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낳아 사건을 법원까지 끌고 가서야 구제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납세신고에서는 행정지도라는 명분으로 사전에 신고할 세액을 세무서가 미리 정해 주는 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행태가 발생하면 정부는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세무조사를 강도 높게 실시하여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공언하고, 실지로 그렇게 세무조사를 해서 세금을 벌금처럼 활용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는 법치세정이 아니라 인치세정(人治稅政)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세무행정 권력으로 못할 것이 없게 됨을 뜻한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잘못되었던 세무행정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국세청 스스로가 국민을 주인의 지위로 다시 돌려놓는 개혁을 수년째 단행하면서 지난날의 옳지 못했던 관행을 청산 중에 있다. 그간에 그러한 개혁은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법체계 자체를 국민이 알기 쉽고 명료하게 단순화하지 않는 한, 그리고 세무행정 종사자의 의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국세청의 그러한 노력이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어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하면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모시는 세무행정이 그 결실을 맺으려면, 세법의 민주화·평이화·단순화가 선행되면서 국세청 자체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고 본다. 행정은 그의 독자적·창의적 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는 법제의 그림자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정의 개혁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10여년 이상의 노력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지위는 누가 은혜를 베풀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국민들 스스로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어지는 숭고한 지위이다. 세금문제에서 나라의 주인되는 지위를 확보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알아서 법을 고쳐주고 국세청이 알아서 행정을 개혁하여 납세자를 주인으로 모셔줄 것이라고 바라기만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국민들은 깨여 있는 눈으로 세무행정의 작용을 지켜보면서 바른 방향으로 세무행정을 개혁할 때에는 아낌없는 성원과 애정으로 용기를 주고, 잘못된 관행을 계속 고집할 때에는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질타하고, 그래도 난폭의 습성을 고치지 않을 경우에는 거센 여론으로 저항해야 한다. 즉 나라의 주인다운 위신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위신을 지키려면 납세자 스스로도 정직하게 납세해야 한다. 납세자의 정직성 부족은 과세행정의 난폭성을 유발하면서 스스로 굴종을 초래하게 되고, 심지어는 세무행정 부패의 온상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세무행정 부패원인의 상당부분은 세법의 지나친 복잡성과 난해성, 납세자의 부정직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세금을 납부하되 납세의 신성성과 나라의 재정운영을 우리가 맡고 있다는 긍지를 지키면서 조세제도와 그 세무행정의 개혁을 추진할 때 납세자가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명근 (강남대학교 석좌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mkcho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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