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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경품 받고 신문구독하는게 잘못인가요?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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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정기간 신문을 구독하는 대가로 신문배급소들이 자전거나 선풍기 같은 물품을 지급하는 행위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품지급행위는 공정거래질서를 위반한다는 이유로 주요 단속대상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문사가 제공하는 현물은 현행 공정거래법 규정상 허용기준을 상회하는 액수이기에 공정한 경쟁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단속 이후 조건부 신문구독행위는 급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이러한 단속은 응당 이치에 맞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신문사들이 경품지급으로 구독자 빼앗기 경쟁을 한다면, 재정형편이 어려워 경품을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경쟁에서 불공정하게 배제된다고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신문사들은 구독자가 지불하는 구독료보다 광고수입이 몇 배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경품을 지급하더라도 구독자를 늘려 광고수가를 높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품단속이 없다면 경품지급으로 광고료를 늘리는 신문만 살아남을 것으로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백화점들의 경품경쟁이 치열했던 시절, 어느 백화점이 아파트마저 추첨경품으로 제공했던 사실을 회상해보면 이러한 우려는 확신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품을 제공하는 신문사는 경쟁사를 시장에서 배제시키려 한 것일까? 경품을 제공해 경쟁사를 파산시킨다 해도 계속해서 신규 신문들이 창간된다면 경품제공은 무의미해진다. 더구나 신문사들은 재정적으로 파산해도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경영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경품제공으로 경쟁사를 시장에서 배제시키려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편, 경품으로 빼앗은 독자를 바탕으로 광고료를 늘리려 한다는 주장 또한 현재 신문시장이 당면하고 있는 처지에 비춰볼 때 우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현재 유료 일간신문의 경우 신문판매부수가 상당기간 동안 정체를 거듭해 오고 있다. 유료 신문사들은 무가 신문사와 광고수주 경쟁을 해야 하며, 한편으론 급성장하고 있는 방송과 인터넷 매체에 광고수주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이렇듯 신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경품제공을 통해 수주 광고료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 또한 근거가 약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사들이 경품을 제공하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경품을 통해 독자를 모으는 행위는 가격차별화가 목적이다. 자사의 신문을 선호하는 독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구독할 것이지만, 자사 신문에 대한 특별한 선호가 없는 독자의 경우에는 구독료에 따라 구독 의사가 달라질 것이다. 자사 신문을 선호하는 기존 구독자에게는 구독료를 유지하면서 신규독자 유치를 위해 가격을 낮춰주는 방법이 경품제공인 것이다. 이러한 기존 독자와 신규독자 간 가격차별행위는 경제적으로도 후생을 높이는 효율적인 방안이다. 만약 차별화된 가격을 동일한 가격으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자. 기존 독자들은 계속 구독할 것이나 신규독자들은 할인되지 않은 가격에는 구독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신규독자들이 신문을 구독할 수 없는 만큼 사회후생은 감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품을 제공해 가격을 차별화하는 행위는 사회후생을 증가시킨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경품제공행위보다 우리 사회에서 우려되는 일은 합리적인 판단의 부족이다. 아파트 경품사건은 언론의 호들갑과 정부의 대책으로 마무리되었다. 만약 아파트가 경품으로 제공되어도 당첨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체감한다면 현혹되지 않는다. 처음 경품으로 아파트가 제공되었을 때에는 백화점 측이 의도한 대로 선전효과가 컸지만, 그러한 경품이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로또복권 열풍을 회상해 봐도 알 수 있다. 자전거 제공행위가 인정되었다면 구독자들은 자전거 같은 현물이 아닌 가격할인과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정부의 경품제한 규정으로, 백화점으로부터 아파트 경품은 물론 신문사로부터 자전거를 경품으로 받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초기에는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정부의 경품류 단속규정으로 잃어버리게 된 점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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