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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기여입학제는 도저히 안 되는 걸까?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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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기여입학제에 대한 찬반의견은 여러 언론매체에 이미 상세하게 보도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찬반주장의 타당성을 대학교육의 목표와 이의 달성에 기여입학제가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에 비추어 따져보고자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는 작게는 학생의 지적 능력 신장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크게는 학생으로 하여금 학문연마를 통하여 자기 생각을 세우도록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내용의 질적 수준이 높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대학에 튼튼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적 뒷받침 없이는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를 찬성하는 논리는 주로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기여입학제가 일정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학재정을 확충하여 좀더 높은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도 장학 혜택을 줄 수 있다. 더불어 학생들에 대한 졸업요건을 강화하고 기부금을 투명하게 관리한다면 기여입학제는 대학교육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여입학생을 정원 외로 선발하므로 다른 학생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 측은 기여입학제가 헌법 제31조와 교육기본법 제4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균등한 교육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조항에 위배되며, 지적 능력이 아닌 경제적 능력에 따라 대학 입학이 영향을 받으므로 국민 상호간에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즉 비록 정원 외 선발이라고 하지만 경제적 지위가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한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여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일부 유명 대학에만 몰릴 것이라는 우려와 제도를 둘러싼 비리가 만연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찬반의견을 들여다보면 기여입학제를 둘러싼 논의는 ‘실용’과 ‘명분’ 간의 갈등현상으로 인식된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 판단은 일반적으로 실용보다는 명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사회 운용의 질서 측면에서 중요하고 또 포기해서는 안 되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의 경우 사회구성원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이 반대논리의 핵심이지만, 이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적 측면 외에 별다른 실질적 폐해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능력에는 인적 측면과 물적 측면의 능력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현재도 개인의 지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이 모두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여입학제는 이를 부분적으로 명시화하는 것일 뿐, 경제적 지위에 따른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기여입학제가 허용되면 일부 유명 대학만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좀더 길게 보면 기여입학을 둘러싼 대학간 경쟁으로 대학교육의 경쟁력 제고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여입학을 둘러싼 비리발생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각 대학이 기여입학제의 도입과 함께 스스로의 평판 유지에 힘쓰는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질 것이므로 그런 문제로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크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기여입학을 계기로 비리로 오염되는 대학이 있다면, 그런 대학은 평판 추락으로 시장퇴출의 운명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는 사람들의 유인(誘因)체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나라 전체의 자원배분 효율성도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의 유인체계를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람들이 대학 진학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경제적 능력으로 대체해야 할 유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능력만 믿고 대학 진학에 필요한 지적 훈련을 게을리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위험과 불안감이 따른다. 비록 그것이 사회 전체를 총괄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청취할 필요가 있다.


기여입학제를 허용할 경우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을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찬성하는 측의 논리대로 대학재정이 확충됨은 물론 효과적 관리를 통해 대학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도 있다. 반대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제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재정 상황이 기존의 방법으로는 개선될 전망이 밝지 않고, 정서적 측면 외에 다른 사람의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등의 폐해를 유발하지도 않으므로, 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적 능력 차이는 인정할 수 있지만 물적 차이만은 인정할 수 없다는 ‘평등’ 가치만을 고집하면서 한사코 반대할 일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기여입학제의 채택 여부와 방법 등은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제도의 정착 과정을 지켜보며 다듬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실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아직도 일천한 단계에 있다.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부자들의 기부를 당연시하면서도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논리도 부자들의 대학 기부는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불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계층간 위화감 조성이라는 정서적 이유로 기여입학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교육시장에서는 물론 사회 전체적인 기부문화의 시장진화 과정을 가로막아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기부문화 정착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김영용(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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