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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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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출총제와 그 대안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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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7년 경제력집중억제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이래 수많은 개정과 제도폐지 및 부활, 그리고 이후 연례행사와 같이 반복되는 개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누더기 규제가 되어 버렸다. 획일적인 출자규제가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위해 이런 저런 예외조항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가 출자총액의 50%를 넘어섰고 작년에는 그 비율이 61%에 이르게 되었다.

출총제의 생명연장을 위해 정부는 그동안 이 제도의 목적을 재무구조 개선에서 소유분산으로, 업종전문화로, 소유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계속 변경해 오기도 하였다. 이같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이제 공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규제라고 하기에는 이미 그 몰골이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타당한 규제로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흉물이 되었다.

이 악명 높은 출총제의 임종을 앞두고 정부는 출총제의 대를 이을 후손을 물색 중이라고 한다. 지난 4월 공정위는 대통령주재 관계장관회의에서 출총제의 대안으로서 사업지주회사 의제, 순환출자 규제, 일본식 업종수 제한을 제시하고, 이와 병행하여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대안의 모색을 위해 공정위는 오는 7월부터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시장경제선진화 T/F」를 발족시켜 금년 말까지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정위가 제시한 상기 대안은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T/F에서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지만 현 단계에서나마 각 대안의 윤곽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우선, 사업지주회사 의제는 엄밀히 말해 출총제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지주회사제도의 보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자산총액이 1,000억 원 이상이고 타 회사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즉,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정의되어 부채비율규제, 자회사 지분율 규제, 지배목적의 타 회사 주식소유 금지 등의 행위제한을 받는다. 대신, 지주회사가 되면 출총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세법상의 과세이연 및 배당소득에 대한 익금불산입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 중에서는 타 회사를 지배하면서 자체 사업도 대규모로 수행하는 경우 지주회사가 되고 싶어도 전술한 “주된 사업”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해당그룹이 핵심 계열사 한 곳을 지정하면 이를 사업지주회사로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사업지주회사 의제’이다. 공정위는 결국 이를 통해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보다 쉽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단 지주회사가 되면 일정기간 내에 부채비율, 자회사 지분율, 타 회사 주식처분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지주회사가 되고자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지주회사 전환을 쉽게 해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충족해야 할 제반 요건들은 매우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반면 이에 따른 혜택은 약소하여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이 될 지는 의문이다. 또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하는 경우 기존의 계열사간 출자로 인한 폐해는 없앨 수 있겠지만 이와 동시에 계열사간 출자에 따른 우리나라 재벌만의 강점 역시 제거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싫든 좋든 현재와 같은 재벌구조는 우리나라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에 최적화된 조직형태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안은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이다. 당초 출총제는 두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 금지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었던 셋 이상의 계열사 간의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당시에도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고자 하였으나 계열사간 출자구조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등의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혀 순환출자를 간접적으로나마 규제할 수 있는 출총제를 대신 도입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제거되었으므로 출총제를 없애는 대신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우선 순환출자가 발생하는 이유가 다양하다. 일부에서 비판하듯이 순환출자는 총수일가의 재산증식과 지배권 승계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계열사간 또는 계열사와 비계열사간 합병과정에서도 발생하고, 총수일가 재산의 사회환원 과정에서도 발생하며, 기업을 상장하면서 주식분산요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심지어는 상호출자금지 또는 소유분산정책 등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순환출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규제할 경우 발생하게 될 위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부그룹에서는 순환출자의 단기적인 해소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순환출자 규제를 강행하거나 순환출자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의결권을 제한한다면 파괴적인 그룹해체나 적대적 M&A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순환출자의 해소가 가능한 경우에 있어서도 미래지향적 투자에 쓰이는 것이 마땅한 거대자금이 순환출자의 해소에 투입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출총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 자칫 국가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출총제의 세 번째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일본식의 업종수 제한이다. 이는 일본이 지난 2002년 우리나라의 출총제에 해당하는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기업집단의 설립 및 전환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의 독점금지법 제9조에 나와 있는데, 동 조항과 관련 지침은 다음의 세 가지를 금지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첫째는 회사그룹의 총자산액이 15조 엔을 넘고 일본표준산업분류 3단위 분류 중 매출액이 6천억 엔을 초과하는 5개 이상의 사업분야에서 자산총액 3천억 엔을 초과하는 회사를 가진 경우이고, 둘째는 총자산액이 15조 엔을 넘는 개별 대규모금융회사가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자산총액 3천억 엔을 초과하는 회사를 가진 경우이며, 셋째는 일본표준산업분류 3단위 분류 중 매출액이 6천억 엔을 초과하는 5개 이상의 상호관련성이 있는 사업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이 10% 이상인 회사를 소유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일본식의 업종수 제한은 본질적으로 그 규제기준의 설정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규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며, 규제기준의 경계에 이르러서는 불가피하게 효율성과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따른 피규제자의 원성을 회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규제기준을 매우 느슨하게 설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위와 같은 업종수 제한은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에 실시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업종전문화시책”을 연상시킨다. 인위적인 업종제한이 자원배분의 왜곡과 기업의 역동성 저하를 초래했다는 과거의 교훈은 현재에도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공정위가 출총제의 존폐와 관계없이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이중대표소송제도에 관해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나라 상법 제403조는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회사에 대하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소의 제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른바 ‘주주대표소송’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중대표소송제도는 자회사(또는 종속회사, 이하 동일) 이사들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모회사(또는 지배회사, 이하 동일)의 주주들이 간접적인 손실을 경험할 경우 모회사의 주주들도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소의 제기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4년 9월 대법원이 원고부적격을 이유로 이중대표소송을 부인한 바 있는데, 공정위와 법무부는 상법의 개정을 통해 이 제도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함에 있어서 최대의 쟁점사항은 아마도 원고적격의 문제일 것이다. 원고적격의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간접적인 손해를 경험하느냐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를 위하여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할 유인이 있느냐 여부이다. 첫 번째 기준에 의할 경우 자회사의 주주(모회사)의 주주는 자회사가 손해를 볼 경우 언제나 간접적인 손해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기준을 잣대로 보면 모회사 주주의 원고적격성을 인정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회사의 이해관계와 자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의 주주는 자회사를 위하여 소송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회사가 한 자회사의 희생 하에 다른 자회사를 지원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주의 권리를 중시하는 영미국가에서조차 이중대표소송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고로 규제는 그에 따른 부작용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규제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규제를 통해서 규제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규제의 이득이 그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능가하는지 여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출총제의 시행과정에서 보아온 규제의 실패가 대를 이어 지속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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